이 가을에는 어디론가 홀로 걷고 싶습니다.
걷다가 눈을 들면 끝도 보이지 않는 들판이나 언덕에 지천(至賤)으로 피어있는 꽃들이 나를 반깁니다. ‘지천’은 아주 흔하다는 뜻과 신분이 아주 낮음을 의미합니다.
그러고 보니 ‘의병’이 생각납니다.
4년 전쯤 인기리에 방영됐던 24부작 ‘미스터선샤인’은 의병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그 속에 애기씨로 불리는 고귀한 신분의 고애신과 종놈의 아들로 태어난 유진최이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녹아있습니다.
일제로부터 나라가 침탈당하는 시대에 꽃으로 살아갈 신분에 ‘총’을 들었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유진최이는 온 생을 다하여 그녀를 오래 살게 하겠다고 목숨을 겁니다. 당시 일제의 힘은 너무나 강력했고, 그들의 총칼 앞에 비극적 결말을 맺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깨졌나요? 그들의 사랑하는 마음이 깨졌나요?
얼굴을 감추고 총을 들면 모두가 의병입니다. 거기에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더 많은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나’는 죽습니다. 야생화가 그렇습니다. 야생화가 그들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의병은 야생화입니다.
천안 성거산에 천주교의 박해로 순교자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줄무덤이 있습니다. 매년 가을이면 그곳은 야생화로 가득합니다.
시인 오석만의 ‘야생화’란 시가 있습니다.
네가 그립다
그냥 그대로 그곳에 있음으로
아름다운 네가 금방이라도 부를 것 같아
그리움만큼 커지는 나무들 사이로
하늘을 담아내며 하얀 구름밭을 만들고
조올졸 흐르는 옹달샘
노래하는 산새들
하늘거리는 잎새 사이로
숨바꼭질 하자며 머리카락
살짝 보이는 네가 보고 싶어
무작정 짐을 꾸리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