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여권 소장, 이용객들 편의위주 운영
아침나절, 김미경(가명·29)씨는 두 아이를 학교 보내고 곧 익숙한 손놀림으로 설거지와 집안청소를 끝냈다. 간단히 외출준비를 끝낸 김씨가 총총 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도서관. 그러나 중앙도서관이 아닌, 신용동사무소내 ‘신용 새마을문고’였다.
-9천여권 자랑하는 ‘작은 도서관’
신용동사무소 내 신용 새마을문고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란다. 널찍한 실내공간에 잘 정돈된 책들도 그렇지만 수많은 신간 책들을 비롯해 1만여권에 가까운 책들이 소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곳엔 최근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는 ‘해리포터와∼’도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도 있으며 ‘태백산맥’,‘삼국지’ 등이 독서광들을 유혹한 지 오래.
김미경씨는 최근 ‘왕건’이나 ‘여인천하’ 등의 TV사극을 통해 역사에 대한 재미에 솔깃, 시대를 불문하고 역사서에 푹 빠져 있다.
독서광으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중 하나는 황한익 신용동장. 동장일 3년째지만 그가 새마을 문고에서 읽은 책은 5백여권에 달한다. “전 책읽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이곳엔 읽을 만한 책들이 아주 많아 틈틈이 읽게 되었죠.”
-매주 이용객수 40명선
신용 새마을 문고는 올해로 열살배기 나이가 됐다. ‘책의 해’였던 지난 92년 10월13일 개관해 지금껏 꾸준히 성장해 온 신용동의 자랑거리다.
물론 처음부터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도서관으로 운영되진 못했다.
10년째 도서관 ‘지킴이’로 자처하는 우미욱(54·여)씨는 “당시 동방서적 김성렬 사장이 1천5백권을, 바르게살기 협의회가 신간 60권을 기증한 것이 전부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곳 문고가 활성화되는 데엔 당시 주민식 신용동장의 관심과 지원이 컸다고.
94∼95년쯤엔 시에서 약간의 예산지원이 가능해지면서 매년 적정시기에 양지문고를 통해 신간을 구입하고 있다. 최근엔 부녀회에서도 매년 20만원 이상의 지원속에 작은 도서관이 안정된 분위기 속에 운영되고 있다.
현재 이용객수는 매주 3∼40명선이며 이들이 대출하는 권수는 1인 3권에서 15권 내외. 이렇게 보면 한 주에 3백여권의 책이 유통되고 있는 것. 이같은 수치는 신용 새마을문고가 일주일에 수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만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운영성과는 괜찮은 편.
빌려가는 대상은 초등학생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우미욱씨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인근에 일봉초등학교가 소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 그 다음이 주부층이며 중·고등학생은 주로 방학때를 이용해 애용하고 있다. 한번이라도 이곳을 이용한 사람은 총 4백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책도둑 등 관리상 어려움도 ‘약간’
매양 밝은 모습의 우씨 얼굴에도 주름이 팰 때가 있다. 가끔씩 발생되는 일이지만, 이용객들이 책 속의 일부 내용이나 그림, 사진 등을 찢어 놓을 때다.
우미욱씨는 “이곳 문고가 신용동의 지식과 지혜의 창고라 볼 때 타지역 사람들을 포함, 좀 더 많은 주민들이 이용해줄 것과 한 권의 책이라도 소중히 여겨줄 것”을 당부했다.
▲당찬 통장-우미욱
신용 새마을문고의 숨은 공로자는 당연 우미욱(54) 신용7통장이다.
우씨가 문고에 바친 열정은 관내에 존재하는 많은 마을문고가 실패하거나 제자리 걸음인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로지 우씨의 땀이 밑거름 돼 독보적으로 성공한 마을문고가 됐기 때문이다.
92년 신용동 6개 단체가 모인 자리에서 우씨는 마을문고의 필요성을 역설, 동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그해 가을에 동사무소 2층에 마련될 수 있었다.
우씨는 우선 책 확보에 나섰다. 여기저기 기증자들을 찾아 나섰으며, 특히 아라리오에서 서적 물물교환이 열리는 날이면 부녀회원들을 이끌고 5∼6백권씩 교환하거나 구입했다.
또한 94세의 노모를 상시 돌봐야 하는 애로사항도 있었지만 ‘문고 활성화는 운영자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판단에 매주 수요일 하루는 동사무소 내 도서관에서 살았다. 1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력하는 우씨의 정성은 ‘활성화’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제 신용새마을 문고는 신용동의 명물이 됐다.
신용 새마을문고가 이렇듯 장성한 이상 우씨는 또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바로 문맹 할머니들을 위한 ‘한글교실’을 운영하는 것.
우씨는 통장일을 맡으면서 지역내 많은 노인들을 만나 그들의 우환과 소원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한글을 깨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임을. “어떤 할머니는 한글을 알게 되고부터 거리의 표지판 하나를 읽으면서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한글을 깨우쳐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노인들의 생활이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씨는 치매 방지를 비롯해 독서의 즐거움, 자녀나 손자들에게의 떳떳함 등 많은 부분의 고민이 해결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우씨는 통장일 3년동안 매년 1백50여만원의 수당 전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왔던 것이 지역에 알려지며 유명인사가 됐다. 주변에서는 우씨같은 성실함과 덕을 갖춘 사람들로 지역사회가 발전해 나간다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