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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복, 산문집 ‘어쩌다, 삭산뜰’ 펴내 

아산 음봉면 송촌리 호수 주변의 알콩달콩 숲이야기

등록일 2021년08월2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하여, 나는 더 늦기 전에 이야기하고 싶다. 삭산뜰의 사계절이 얼마나 맑고 아름답고 고즈넉하였는가를…>


이문복(69) 시인이 산문집 ‘어쩌다, 삭산뜰’을 냈다.

교사로 퇴직한 그에게는 ‘사랑의 마키아벨리즘’이란 시집이 한 권 있다. 수수한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시집 하나, 산문집 하나는 만족할 만한 열매다. 

세상에는 ‘반드시’라는 다짐으로 누가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을까 경쟁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속에 ‘어쩌다’를 더 생각하는 그는 어찌 보면 ‘특별’하다. 

어릴적 충남 서산의 외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그, 제일 재미있던 책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이고 보면 동화적이고 자연적인 유년시절의 감성이 커서도 마음판에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또한 “6세 이전의 환경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꺼내며, 20대에서도 책 『월든 숲 속의 생활』을 읽고 동경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가 사는 집은 축사를 허가하지 않는 호수 근처다.

‘운 좋게도’ 산을 등지고 앞 쪽으로 호수가 펼쳐져 있다. 게다가 시내에서도 멀지 않고, 큰 길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큰 길에서 샛길로 꺾어 들어가면 이내 공기가 서늘해지면서 낮에는 호수가, 밤에는 칠흑빛 적막이 나타나는 신기한 곳”이 그가 사는 집이다. 

삭산뜰에서 보낸 날들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호수에 피어오르는 새벽안개를 보고, 해뜨는 아침과 밤하늘 별자리, 풀벌레와 새들의 울음소리, 봄바람에 호르르 떨어지는 벚꽃잎들….

그곳이 하이디가 사는 알프스고 월든 숲 속 소로의 오두막이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산다’고 했던가.

집앞에서 채취한 꽃잎으로 만든 차와, 쑥과 냉이에 밀가루 솔솔 뿌려 지지는 야채전, 벽난로 참나무 숯불로 구운 고구마...

작가는 더 늦기 전에 삭산뜰의 사계절이 얼마나 맑고 아름답고 고즈넉하였는가를, 더 망가지고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가를, 기록자의 의무로 생각해 산문집을 내었다고 밝힌다.

덧붙여 ‘개발과 성장위주의 경제논리, 인간의 편리함과 속도를 위해 희생된 유형무형의 존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하였다. 
 

산문집은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소재와 기타로 구분돼 있다. 이야기를 계절별로 구분했지만 메시지의 중심축은 ‘자연애(愛)’와 자연이 가르쳐주는 배움이라 할 수 있다. 

맛난 열매를 제공하는 자두나무를 괴롭히는 버드나무. 벼르고 별러 나무를 베었는데 실상은 자두나무 가지가 기댄 것이었음을, 풋열매를 잔뜩 매단 가지가 함께 쓰러져버린 상황을 망연자실 바라보게 된다. 

장다리밭으로 변한 열무밭을 갈아엎으려 했다가 개구리가 툭 튀어나온 이야기도 재미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폐허가 된 장다리꽃밭을 둘러보았다. 아! 우왕좌왕 갈팡질팡 허둥대는 벌레들…. 본의 아니게, 나는 한 세계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작가는 꽃 사이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나 줄기나 이파리 사이로 토도독 튀어다니는 날벌레들만 주목했지, 그 아래 그늘지고 축축한 곳에서 보금자리 틀고 있는 생명들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국화꽃베개를 만들고 싶었던 그. 몇 해 전부터 뒤뜰에 심은 야생국화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주었지만, 어느 해부터인가 벌들이 보이지 않는 국화꽃밭 앞에서 <이제 국화꽃베개 대신 벌들을 소망한다>며 하염없이 벌들을 기다린다.

시들어가는 국화꽃들, 그러나 오늘도 선뜻 꽃을 따지 못한다. 어느날 TV 채널을 돌리다 ‘식물의 교배를 돕는 벌들이 사라지면 결국 인류도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환경다큐멘터리가 다뤄지고 있었다. 

작가는 산문집 마지막 글에 삭산뜰의 현실을 직시하며 마무리한다.

전원주택단지가 머지않아 들어설 거라는 소문은 이미 나무들이 베어져 옆구리가 휑해진 산자락을 보았을 때 알았다.

빙어가 알을 낳으러 역류하던 개울도 산업도로 공사와 함께 막혀버렸고, 고속철도역으로 터널이 뚫리면서 뒤이어 골프연습장도 들어섰다.

정체 모를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 길(자연)을 걷지 못하게 되는 때’는 앞으로 얼마 뒤에 찾아올까. 아마도 멀지 않았을 테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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