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이’.
언뜻 영화제목 같기도 하고, ‘영심이’도 떠오른다. 영심이는 1990년대 배금택이 만화책으로 출간해 인기가 많았던 중학생 만화주인공 이름이다.
홍순이는 흔치 않은 이름 같지만 아주 희귀하지도 않은 것이, 대학교수도 있고 무용가도 있고 가수도 있다. 이름이 홍순이가 아니라, 성이 홍이고 이름이 순이다.
천안 백석동 박순래 화실에서 ‘홍순이, 홍순이’ 하길래 <홍순이>가 뭘까 했더니 서양화가 홍순이(55·천안 안서동)를 말하는 거였다.
“화실이 이쁜데 같이 갈래요? 음봉이라 멀지도 않아요.”
박 선생의 말에 호기심이 부쩍 생겼다. 도록에서 본 홍순이 작가의 그림이 자꾸 끌어당기니까 말이다.
▲ 그의 화실. 밖에서 바라보는 화실은 아담, 화실 속에서 바라보는 밖의 풍경은 광활.
천안에서 이렇다할 소속도 없이 잘 알려지지 않은 홍순이 작가지만 ‘실력파’이자 ‘열성파’다. 6일 아산 음봉면 월랑저수지 옆 그의 화실 <모네의 정원>을 찾았다.
나니아2560 카페 주인과는 오래된 친분으로, 나니아 카페정원 한 켠에 있는 아담한 컨테이너를 화실로 쓰고 있다. 화실 이름이 어찌 지어졌을까 궁금했는데, 홍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순깔금하다.
“모네를 좋아해서요.”
▲ 제가 홍순이예요. 성이 '홍'이고 이름이 '순이'랍니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아크릴이나 유화보다 수채화쪽을 더 좋아했다는 그녀. 아이가 여섯살때쯤 수채화를 유화처럼 표현하는 서울 연희동의 스승을 알게 됐다.
유화적 표현을 통해 묵직함을 주면서도 수채화같은 가벼움을 주는 기법, 바로 숨통이 트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하는 것이….’
유레카를 외치며, 일주일에 한번씩 5년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서울을 올라갔다.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건 축복이자 커다란 즐거움이다. 때때로 힘들때면 그렇게 마음을 다졌다.
최근 그의 첫번째 개인전이 있었다.
지난 7월21부터 일주일간 서울 인사동길 ‘갤러리 이즈’에서 ‘홍순이’라는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연 것이다.
“내 그림에 자신이 있을 때, 그때 개인전을 갖자고 다짐해왔죠.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부끄럽지만 이 정도면’ 하고 이번에 용기를 내었어요.”
스스로에겐 ‘이제 시작이야’ 하고 말해주었다.
인생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면 나에겐 이제 가을쯤 왔을까?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 드디어 문을 나서게 됐음을 위안했다.
▲ 그의 화실은 나니아 카페 정원 한 켠에 풍경처럼 자리잡고 있다.
첫 개인전을 준비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원하는 대관을 할 수 있는 것도, 코로나가 완화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30년도 더 이전부터 “첫 개인전을 하게 되면 보란 듯이 인사동에서 할 거야” 하고 말한 것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다행히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갤러리를 많이 찾아주었고, 그림도 꽤 판매되었다.
그림에 대한 좋은 평들을 듣다 보니 자신감도 부쩍 올라갔다.
▲ 화실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같다.
그의 작은 화실에서 양쪽 유리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바깥풍경이 동화같다. 특히 언덕쪽으로 나있는 창문은 가로로 길게 내어 바깥 나무숲이 한 폭의 그림같이 보여진다.
자연이 좋아 나무와 풀, 꽃, 자연풍경을 맘껏 화폭에 담는 홍순이 작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 그는 ‘떫은 감이 홍시가 되고 곶감이 되어 곁에 두고 가끔씩 꺼내먹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화실 바깥에선 갈색 염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소년이 다가가자 반색을 하고는 강아지처럼 달려든다. 날은 그리 덥지 않지만 태풍이 오고 있어서인지 바람은 제법 속도감 있게 불어대고 있었다.
자연을 따스하게 그려내는 작가, 그의 그림을 내년쯤에는 천안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나니아2560 카페에서 어쩌면 볼 수 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