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에게 말을 붙이고, 조마조마 그 응답을 기다리는 몸짓일 뿐이다』
정인숙(61) 시인은 지난 5월20일 출간한 첫 시집 ‘장다리꽃 나비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자연이 주제다. 봄비, 여름밤, 둥지, 무창포, 해바라기, 인동초, 광덕산, 개울가, 들꽃향기, 연분홍 등등. 그렇다고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은 아니다. 스스로는 삶의 노곤함을 자연에게서 위로받고자 했던 ‘생활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시 『후제(충청도사투리 ‘나중에’)』에서는 사는 것이 버거워 “나중에 해주마” 하는 어머니가 등장하고, 이어 어머니를 빼닮은 듯한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모진 겨울을 겪어 봄을 맞아야 하는 『인동초』도 화자의 삶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갑자기 찾아온 경제적 궁핍. 가족들은 아주 오랫동안 고통과 아픔을 겪었죠. 어린 아이를 떼어놓고 개미처럼 일해야 했어요.”
그가 되돌아본 젊은 시절은 한 푼 여유가 없었나 보다. 시 『이사가는 날』과 『이사하던 날』을 보면 그 시절을 어찌 살아왔을까 아련하다.
목련 꽃잎 떨구는 날 이삿짐을 꾸린다 /
버리고 덜어내도 등봇짐이 넘친다 /
(중간생략)
바람 부는 대로 걷다가 멈춰선 길 /
서성이다 물결 따라 걷는다 /
이사가는 날, 왜 그리 절망스럽고 절망스러웠을까.
한가닥 빛조차 없는 어둠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느낌. 그저 ‘살아내야지’ 하는 정도의 용기만 내었던 것 같다.
시 『이사하던 날』은 더욱 애달프다.
“결혼 7년만에 집 팔아 정리하고 방 두 개짜리 셋방으로 이사했는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그러더군요. 선생님이 셋방사는 아이 손들라 했는데 자기는 안들었다고. 방이 세 개여야 셋방인데 우리는 방이 둘이라 둘방이잖냐고.”
가슴은 마구 쓰렸지만, ‘그래 잘했다’ 했다. 아이는 개구리 우는 그 동네가 좋다나. 엄마 입장에선 밝게 커줘서 고마울 뿐이다.
그러고 보면 시 『장다리꽃 나비춤』의 마지막 부분, ‘채마밭 장다리꽃 저녁햇살 베어물고 나비춤을 춘다’는 싯구는 그 자신의 일생과 닮아있다.
사는 것조차 힘든 속에서 장다리꽃이 피었다. 그리고 이제는 삶에서 해탈해 나비춤을 추는 여유를 가져본다.
그의 인생은 요즘이 2막이다. 좋아하던 플롯도 무대에 설 만큼 열심이다. 최근 퇴직과 함께 생활전선에서 벗어나 ‘천안문협 지부장’도 맡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써온 시들을 골라묶어 첫시집 『장다리꽃 나비춤』을 내었다.
어쩌면 늦깎이 행복을 얻으려고, 그리 각박하게 살아왔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