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산 올라가
길을 잃었다
청설모에게
길을 물을 수도 없다
꽃잎을 보며
약수터를 지나고
가랑잎을 쳐다보며
비탈길에 섰다
발길이 닿은 곳
어디든지 길인
오늘
길눈이 어둔 나는
허공에게
길을 묻는다
발길이 닿는 곳 어디나 길이 될 수 있다면, 시인은 어느 길을 선택하든 산을 내려갈 수 있다. 길은 원래 있는 게 아니라 발길이 닿으면 길이 된다. 벼랑에서 한 발을 내딛으면 길이 나타나는 우너리와 같다고나 할까? 문제는 벼랑에서 한 발을 더 떼는 일을 실천할 수 있는냐는 점에 있다. 벼랑은 삶의 한계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벼랑에서 한 발을 떼는 존재는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발길이 닿은 곳 어디나 길이 되는 장소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자리를 가리킨다.
길눈이 밝은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꿰뚫고 있다. 다른 길로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길눈이 어두운 시인은 그래서 모든 길이 길이 되는 허공에 길을 묻는다. 스스로 짊어진 무거운 (인간의)시간을 내려놓을 길목에 접어든 것이다.
-오홍진(문학평론가)
정인숙/ 1998년 <문예한국>으로 등단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선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천안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첫시집 '장다리꽃 나비춤'이 2021년 5월21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