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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홍경사터, 천년맞이 유채꽃 만발

천안 성환읍 대흥리 일원 8000㎡에 꽃밭 조성

등록일 2021년05월2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천안에서 평택으로 가는 국도1호선 옆에 건립된 봉선 홍경사가 올해로 창건 1000주년을 맞았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축하는? 

천안시는 성환읍 대홍1·3리 주민들과 대홍리 일원 8000㎡ 논에 유채꽃밭을 조성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봄까지 꽃밭을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와 포토의자 등을 준비했다. 현재 유채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천년사찰은 아무 흔적도 없지만 국보제7호로 지정된 ‘봉선홍경사갈기비’가 세워져 있다. 갈기비는 절의 창건에 관한 기록을 담은 비석이다.
유채꽃 풍경에 취하고 역사문화유산도 배우는 ‘1석2조’의 힐링공간으로, 천안시민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로 천년된 ‘봉선홍경사’

‘봉선(奉先)’은 선조의 덕업을 이어받아 지킨다는 의미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봉선? 그거 신봉선 말하는 거예요?” 하고 물을 수도 있다. 개그우먼 신봉선도 ‘봉선’이지만….

천안에는 올해로 1000년 된 ‘봉선’이 존재한다. 바로 천안 성환에 있었다던 ‘홍경사(弘慶寺)’다. 때는 고려 현종7년(1016) 200여간의 사찰을 창건했다.

현종의 부왕(父王)이 창사하려다 서거하자 아들인 현종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완성한 사찰이다. ‘봉선홍경사갈’에는 현종의 아버지가 불법을 받아들이고 대중을 위한 불법선양에 뜻을 두었던 바, 그 뜻을 받들어 이곳에 사찰을 짓고 여행객의 고통을 덜고 불법을 선양코자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런 이유로 사찰의 이름을 ‘봉선(奉先)’이라 했다. 이른바 ‘봉선 홍경사’다.
 

홍경사가 지어진 연유는 홍경사갈에도 적혀있듯, 당시 이곳은 가까이 산세가 험하고 들판에 갈대가 우거져 도적(강도)이 출몰했다.

현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간의 대사찰을 세웠고, 절 서쪽에다 80간의 여관 한 채를 지었다. 여관은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대사찰은 승려들이 머물고, 여관은 일반 여행자들의 편의제공과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도중의 휴식처로 삼게 했다. 이규보의 ‘도장문’에는 홍경사에서 국가적 행사가 거행된 자취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명종7년(1177) 망이(亡伊) 등이 반란을 일으켜 광연통화원(이후 홍경원이라고도 불리움)을 불태웠다 한다.
 


https://blog.naver.com/ybk9635


직산현은 호서지방으로 들어가는 첫 머리다. 이런 이유로 ‘호서계수아문’을 세웠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오가면서 ‘싯구’를 남겼다. 이중 고려와 조선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첨(李詹·1345~1405)의 <홍경사>에는,


말(馬)을 홍경사에 쉬고 다시 옛 비문을 읽네
글자가 지워진 것은 돌중이 때린 것이요
이끼가 남은 것은 봄에 들불 탄 흔적일세
.
.

이같은 싯구가 전해온다.
 

1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화려했던 홍경사는 무엇이 남았을까.

현장은 모두 논으로 변해버렸고, 홍경사갈만 옛 흔적을 증거할 뿐이다.

‘홍경사갈’은 비신 상단에 <봉선 홍경사갈기>라고 횡으로 써져있다. 최충이 짓고 백현례가 썼다. 어룡형태의 비는 머리를 우측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귀부와 이무기를 조각한 덮개돌인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문 말미에 쓰여진 글로 판단할 때 절을 세운지 5년 뒤인 현종17년(1026)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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