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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 '천안 주공4단지'

30여년동안 이 일대 터줏대감이던 단지가 재건축으로 새롭게 변모 예정

등록일 2021년05월0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천안 다가동에 있는 주공4단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주공4단지'야 어디에나 있겠지만,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주공4단지의 옛 모습은 없어진다는 말이다.

주공4단지가 처음 생긴 때는 1986년.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당시 아파트 21개동에 690세대로 구성됐다. 5층 높이에 44제곱미터에서 67제곱미터 면적의 소형주택들이다.

이제 이곳은 1225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다시 들어설 예정이다. 동 수는 10개로 절반 줄어들지만 30층 가까운 높이로 올라간다. 전용면적은 60제곱미터에서 85제곱미터까지 조금 더 커졌다.

이미 주공 1단지부터 2단지, 3단지가 재건축됐다. 이제 4단지 차례다. 이곳 일대에 터줏대감처럼 눌러앉았던 '주공4단지'의 옛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이곳의 역사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누가 멈출까. 사람도, 건물도, 때로는 산천까지 유구한 세월 속에 스러지는 것을...

 

마지막 남은 사람들의 집들이 물건을 뺀다. 이들은 버티다 버티다 할 수 없이 나가는 것이다. 왜?


갈 데가 없단다.

한번은 한 이곳의 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는 잘못됐다고 했다. 그동안 화도 내고 떼도 써봤는지 이젠 얼굴에는 분노도 서려있지 않았다. "할머니도 어디론가 가셔야죠?" 물었더니, "내가 갈 데가 어딨어? 여기서 주는 돈 가지고는 아무데도 못가?" 하셨다. 아, 이런 분들은 정부라도 나서서 갈 곳을 함께 찾아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성한 나무는 무심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무들은 그대로 베어져 사라지게 될 운명일 것이다. 무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의 결단에 맞겨져 버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름이 오면서 푸르른 나뭇잎, 아마 마지막일 수도 있는 생명을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이 무성한 잎을 피워내고 있다.






한달 전만 해도 일을 보던 관리사무소까지 폐쇄됐다. 이미 떠나버린 집들도 '출입금지'란 붉은 딱지가 붙어버렸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집이 되었다.

'운명을 맞이하라.'


109동과 110동의 모습이 이상하다.




옆동에서 보니 차단시켜 놓았다.




곧 건물을 헐어버릴 셈이다. 수십집이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곳 두 동은 더이상 사는 사람들이 없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입장에서야 아직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결단을 서두르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보란 듯이' 허물 것이다. 동 수는 순번이 있으나, 허물어지는 건 순서가 없나보다.




놀이터는 그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거쳐갔는지... 40대 안팎의 어른들도 예전엔 이곳에서 모래놀이도 하고 미끄럼틀도 타면서 '희희낙낙' 했을 텐데. 그들의 부모는 또 벤치에 앉아 그런 자신들의 아이들을 안전감시하면서 얼마나 수다를 떨었을까.










한때 새집냄새가 폴폴 났던 4단지에 30여년 세월의 '때'가 참 많이도 끼었네.

두 동이 서로 마주보이게 짓다 보니, 등지고 있는 곳은 뒤뜰 같이 사용돼 왔다. 여름이면 이곳 뒤뜰은 모기들의 천국이었다. 예전, 잘 나갈때야 방역을 철저히 해서 그런대로 모기들과의 싸움에서 우세를 보였겠지만, 재건축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면서 방역에 쓸 돈도 없다더라. 그래, 요 2~3년, 아니 그보다 더 모기들의 세상이 돼버렸다. 이제 그런 모기들과도 안녕이구나. 모기들은 또 어디로 갈까.




우편함으로 사람들의 형편을 살펴본다.

우편이 많이 꽂혀있는 집은 인맥이 많은 사람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들. 또한 우편이 적게 꽂혀있는 집은 일찍 집을 떠난 사람들. 아직도 많이 꽂혀있는 집은 늦게 떠났거나 아직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




그런데 생각보다 차량들이 많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 안되는데, 차량은 그보다 두세배 더 많아 보인다. 이 주변 상황을 보아서는 주차하고 볼 일 보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맨 끝동에 속한 109동 뒤꼍. 이젠 1착으로 허물어지기 위해 차단돼, 더이상 이와 똑같은 풍경을 볼 수가 없다.













 

나무들의 수난을 어이할꼬..

사람이야 떠난다지만, 땅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나무들은 떠나질 못한다. 작은 나무들이야 형편에 따라 옮겨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나무가 죽을 것이다. 큰 나무를 옮기는데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높다. 나무가 아주 고귀하지 못하면 베어지고 만다. 그게 현실이다.
















여하튼 그동안 무탈하게 잘 살아왔다. 모든 생명이 유한한 것이니 4단지 건물들이라고 무슨 수가 있겠나. 이미 1단지, 2단지, 3단지가 수순을 밟았다. 주공4단지 차례가 왔을 뿐. 그리고 얼마 안있음 허허벌판같이 변모할 것이고, 조금 더 있으면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올라갈 것이다. 30여년의 세월이 바뀌는 건 겨우 1~2년이면 된다.


4단지가 사라지면, 저절로 그 앞 상가들도 새롭게 변모할 테다. '변신은 무죄'라던데, 이후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사뭇 궁금하다. 그렇게 다시 수십년이 흘러가겠지 싶다. 이곳에서 신혼을 꾸미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시집장가 보낸 후 노인이 돼버린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더욱 아쉬울 법하다. 앨범 속에서 그리움이라도 온전히 남아있기를...


2021년 6월 22일

다시 가본 4단지는 단지 내 수많은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있었다. 끝까지 떠나지 않고 버텼던 수십가구들도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모두 떠났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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