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자본주의’라는 말은 곱상한 단어로 들린다. <돈을 추구하는 경제활동>이라는 의미에 어디 흉측한 모습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돈을 맹신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본주의는 점차 피에 물든 ‘쩐의 전쟁’이 돼버렸다.
변영환 작가가 돈으로 조형성을 추구한 지는 벌써 20년도 더 지났다. ‘이 시대는 자본주의’라고 생각한 때부터, 그리고 돈이 모든 가치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시대상황을 보면서 그 또한 자본주의 담론에 푹 빠져버렸다. 대체로 비판에서 시작된 사유는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라며 은근히 권유한다.
변영환 작가의 상상력은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돈으로 형상화했다.
“동전은 훌륭한 조각작품이고 지폐는 최고의 회화작품”이라는 변 작가. 코로나19로 살얼음판을 딛고 있던 지난 2020년 12월15일, 천안 유량동에 위치한 리각미술관에 ‘화엄의 딜레마’란 주제로 조용히 개인전을 열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유료(성인 3000원)로 관람할 수 있으며 3월15일까지 전시를 열고 있다.
돈의 바다에 빠진 인간군상들, 해법찾기 골몰
변영환 작가가 사용한 화엄의 ‘화’는 빛나거나 꽃이 아닌 재물을 나타낸다. 역시 자본주의, 돈이다. 전시회에 발을 들여놓으면 첫 번째로 마주하는 작품은 2005년도 작. “작품에 돈을 사용하니 반응이 뜨겁더라”는 작가는 ‘이게 작품이냐?’부터 ‘돈 가지고 장난하냐’며 대부분 극도의 비판적인 말들을 퍼부었다고 회상했다.
다음 작품은 그보다 10년 전인 1995년 작품으로, 자본주의에 허덕이는 인간군상들을 표현했다. “이미 80년대부터 인간의 정체성을 생각했고, 그래서 인간군상을 많이 그렸다”는 그는 “나중에는 사회 정체성으로 발전하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회화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전쟁터의 살상무기인 총도 등장한다. 자본주의를 전쟁터에 비유했다면 총알은 당연 동전과 지폐다. 탄알집에 동전을 가득 채우고 자본주의를 향해 내갈긴다. 돈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의 사회가 연출되는 것이다.
전시회장의 압권은 뭐니 해도 중앙에 펼쳐놓은 ‘화엄의 딜레마’다. 돈의 바다에서는 법이나 종교도 표류할 뿐이다. 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 미술평론가는 “돈의 바다에서 일생을 허부적거리는 현대인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며 “동전으로 현대사회의 단면을 지적한 돈꽃세상, 동전으로 이렇듯 흥미로운 미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변영환 작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했다.
무섭도록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한 작가는 이 시대를 사랑하나 보다.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돈의 전쟁터를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던 듯, 작가는 전시회장에 자기의 작품을 무료로 선물하는 작은 이벤트를 만들었다. 인간 12띠를 소재로 그린 작품은 3만원이란 값을 메기면서도, 선택적으로 선물도 하는 코너를 마련한 것이다.
변영환 작가는 “부자가 공유의 가치를 가질 때 자본주의 사회는 그 단점을 극복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희망을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예술 또한 돈을 필요로 하지만 돈에 찌든 자본주의를 타파할 힘도 갖고 있음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변 작가는 동국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23회 퍼포먼스 100여회를 가진 중진작가로, 충남문화예술연대와 천안문화예술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