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도저히 이길 형국이 아니라 판단되면 ‘판 흔들기’가 시작된다. 정상적으로 가면 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길 확률을 높이려면 편법이라도 써야 한다. ‘판 흔들기’의 무서움은 일체 방어 없이 공격으로만 승부한다는 것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천안 을선거구는 정책선거는 뒷전인 채 박완주(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사무실’만 보인다. 천안지청장 출신의 이정만(미래통합당) 후보가 지식산업센터 내 시설을 선거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느냐며 줄기차게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직의원의 갑질’로까지 거론하며 치명적인 약점으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게임을 전환하는 수로 보기에 이 문제로 충분한 데미지(손해)를 입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천안시는 지난 3월23일 건물주인 천안미래에이스하이테크시티 관리단장에게 ‘지식산업센터 내 지원시설(공용부문)에 대한 시정명령’ 공문을 발송했다. <입주대상시설이 아닌 용도로 활용하려는 자에게 지식산업센터를 임대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법률에 근거해 현재 2층 회의실을 선거사무소로 이용하도록 임대하고 있는 부분을 시정해달라는 내용이다.
공방을 해오던 이 후보측은 3월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천안시청이 (드디어)시정명령을 내렸다”면서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회의실을 선거사무실로 사용하는 것은 갑질로 비춰질 우려가 많으니 더 이상 입주기업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비난했다.
박완주 후보는 “임차인으로서 관련 절차를 충분히 이행한 임차계약이었다”며 “불법이라면 오히려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천안시는 선거사무소를 입주대상이 아니라고 보지만 국토부와 산자부는 선거사무소도 입주가 가능한 근린생활시설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도 질의를 통해 해당 장소의 사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는 등 선거사무소 계약체결 이전에 관련절차를 철저히 이행했다”며 “게다가 이곳은 지난 2년동안 빈 공간이었는데도 이정만 후보측은 흠집내기에 열중해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끝없는 공방, 유권자들은 식상
이정만 후보는 1일 또다시 “후안무치한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박 후보 주장대로라면 천안시와 국토부, 산자부가 왜 시정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냐”며 “산자부 회신내용이 선거를 위한 관리·홍보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무실 형태라고 했는데, 엄연히 정치활동이 진행되는 특수한 사무실로 이또한 말장난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그 공간이 2년동안 방치됐다고 해서 선거사무실이 될 수는 없는 것으로, 잘못했으면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천안시 유권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박완주 후보는 “이정만 후보가 기본도 모르는 정치공세를 펼친다”며 “사실관계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을 하는데 법조인 출신인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천안시가 보낸 시정명령의 대상자도 자신이 아닌 건물관리단임을 강조하면서 “이 후보가 상대후보가 아닌 변호사로서 법률자문을 의뢰받으면 어떻게 조언할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이런 공방속에 천안시는 4일(토) 보도자료를 내고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천안시는 법률에 의거 선거사무실이 관련 규정의 용도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최근 산자부는 이 건과 관련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며 “변호사들도 의견이 달라 해석상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4월1일 법제처에 최종 유권해석을 요청한 상태로, 천안시는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내용이다.
법을 위반했으면 처벌을 받게 되고, 입주기업체에 대한 갑질이면 피해자인 기업체의 불만이 쏟아질 것이다. ‘현역의원의 갑질’은 공정사회를 추구하는 시대에 가장 나쁜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쓰지 않는 공간에 민원제기하는 피해자들도 없고 정상적 임대절차와 기관조차 해석상의 이견 등을 고려하면 이번 사안이 논란이 될 사안인지 의아하다. 유권자들은 기관들마저 해석이 다른 사무실 위반여부가 중요한게 아니라 후보들의 열띤 정책선거를 보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