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가명)씨는 매일 아침 아픈 딸 영서(20‧가명)의 침대 옆에 앉아 영서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가 조금만 더 건강하게 낳아줬더라면, 내 딸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엄마가 너무 미안하구나.”
최영숙씨(55‧가명, 아산시 온양4동)는 매일 아침 아픈 딸 영서(20‧가명)의 침대 옆에 앉아 영서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루를 시작한다.
평범했던 일상 한 순간에 무너져
25년 전 최영숙씨는 지인의 소개로 건축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큰 딸을 낳고 남 부럽지 않게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다. 첫째 영희(22‧가명)를 낳은데 이어 2년 후 둘째 영서를 출산했다.
평범하고 소중했던 한 가족의 행복은 이때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영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두증으로 뇌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야 했다. 영서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병원을 왕래하며 들어가는 의료비를 비롯해 여러 가지 비용지출이 쌓이며 부부는 조금씩 생활고에 찌들고 지쳐가고 있다.
게다가 반복되는 수술로 영서의 눈은 강막 혼탁까지 발생해 한쪽 눈이 실명상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또 장애판정을 받아야 할 정도로 영서의 척추측만증은 심각하다. 그러나 영서는 수술을 하면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장애인등록도 하지 않은 채 친구들의 놀림을 견디며 학교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최씨의 남편은 IMF 이후 1년이 넘도록 다니던 회사에서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그러다 회사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폐업하고 말았다. 직장을 잃은 남편은 생활비마저 조달하지 못하게 되고, 이들 가족은 병원비와 생계비가 없어 막막한 상황이다.
희망을 단숨에 앗아 가버린 수술
첫째 영희는 동생의 장애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해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영서도 자기와 비슷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해 심리학과에 입학원서를 내 합격했다. 그렇게도 바라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만 영서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2019년 봄,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으면 단숨에 잘 걸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수술을 받던 중 원인 불명의 저산소증으로 수술이 중단됐다.
잘 이겨 낼 것 같았던 영서는 수술 도중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며칠 동안 지내야 했다. 당시 담당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며 더욱 절망스러운 말을 영서 가족들에게 전했다.
영서가 병원에 있는 동안 가족들은 하루하루 견기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 들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고 아픈 영서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약 없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서는 두 달 만에 자가 호흡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영서가 회복되고 있다는 기쁨도 잠시, 병원생활이 길어지면서 영서의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에크모라는 기계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현재 의료비는 4200만원으로 산더미처럼 쌓였다. 건축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최씨의 남편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의 소득으로 쌓이는 빚을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가족의 일상이 되어 버린 병원생활
최영숙씨에게 병원 입원실은 집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삶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처럼 영서가 누워있는 병실 침대 옆에 항상 붙어 있다. 언제 영서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갈지 기약 없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영서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모든 신경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정작 최씨 본인은 침대 옆 구석 보조침대에 쪼그려 앉아 있으면서도 힘든 내색조차 하지 못한다. 최씨는 오늘도 그렇게 영서의 머리맡에서 하루를 보냈다. 또 내일도 오늘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최씨는 매일 병원에서 컵라면 한 개와 햇반 하나로 삼시세끼를 해결한다. 그러다 보니 라면이 물려 굶을 때가 더 많다. 이제 병원 생활이 지겹고 지칠만도 한데, 영숙씨는 딸 앞에서는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의지하고 지낸다.
이제 다시 희망을 이야기해도 될까?
영서 가족들에게 오랜만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아산시 통합사례관리사를 만난 이후 다행히 일부 의료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최씨 부부는 늘 건강하지 못한 딸을 낳아 자책하고 마음속에 짐으로 남겨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사례관리사를 만나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 수 있었고 경제적인 도움은 물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영서도 이제는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기로 했다. 비록 똑바로 서거나 예쁘게 걷지는 못해도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영서나이 이제 스물.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학의 문턱에서 입학을 취소해야만 했던 영서에게 언니가 들려주는 대학생활은 꿈만 같다. 영서는 대학캠퍼스 풍경, 강의실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교수님들, 각종 동아리활동 등 대학 생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언니에게 묻고 또 묻는다. 최씨는 영서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아픈 마음을 애써 감춘다.
25년 전 최씨는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가면서 처음 비행기를 타봤다. 지금 당장 소원이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영서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사랑스런 두 딸과 옆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돼주는 남편이 있어 다시 한 번 힘을 내 본다. 영서가 어서 빨리 일어나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최씨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다. 최영숙씨는 영서의 건강이 회복되는 날 네 가족이 함께 비행기 타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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