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광덕사에서 800미터쯤 산속으로 들어간 운초 김부용 묘.
언제부턴가 묘에 두른 석축의 한쪽이 무너져 내렸고,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흉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어느 방문객은 사진제보를 하며 “오래 된 것 같은데 시는 이런 상태인지도 모르는 거 아니냐”고 했다.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은 황진이, 허난설헌, 이매창이다. 조선의 3대시기(三大詩妓·시에 능한 기생)로는 부안의 이매창(1573~1610), 개성의 황진이(1506~1544 추정), 그리고 허난설헌 대신 평안남도 성천의 김부용(1805-1854)을 말한다. 참고로 운초(김부용)의 태어나고 죽은 때는 부정확하다.
이매창과 황진이는 각각 고향인 부안과 개성에 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부용은 그 묘를 알 수 없다가 1974년 천안향토사측이 천안 광덕의 한 이름없는 묘가 그의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까지 매년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다.
김월영 의원도 얼마 전 현장방문때 김부용 묘를 찾았다가 묘의 석축 한쪽이 무너져 있는 것을 봤다며 “당시 관계직원으로부터 습해서 그렇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고증이 안됐을 뿐이지 김부용 묘일 수도 있다면 천안시가 적극 조사검증해야 맞지 않겠냐”고 전했다.
김부용 묘에 대해서는 시가 관리하는 유적이 아니다 보니 예산을 사용하거나 지원하지 않은 채 지내왔다. 그간 등한시해왔다는 문화관광과는 앞으로 관심갖고 ‘향토유적’으로라도 관리되도록 부용묘에 대한 검증작업과 역사적 가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상태를 전해받은 주성환 문화관광과장은 “현장에 나가 응급조치가 가능한지를 살펴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부용 묘 ‘검증 가능한가’
부안 매창(梅窓)의 묘는 지방기념물 제65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지만, 부용의 묘는 아직 그 근거를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김부용 묘로 발견된 것이 1974년.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흘렀건만 시행정은 아직 김부용 묘가 맞는지 기본적인 연구나 자료수집조차 안돼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천안향토사계측은 ‘향토유적 수난위기’ 또는 ‘수수방관’ 등의 불만섞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2012년 천안향토사연구회는 운초 김부용 묘를 문화재로 지정해달라 신청하기도 했다. 천안시는 검토절차를 거쳐 충남도로 올렸지만 회신에는 ‘전언 외 김부용 묘라는 근거가 빈약하다’며 보완할 것을 요구했다.
문화재 지정과정에는 시가 자체추진하는 것과 개인이 지정해달라고 신청하는 것이 있는데, 운초묘는 후자로 취급하고 있다.
처음 정비석 작가와 함께 김부용 묘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린 김성열 전 천안역사문화실장은 “김이양 대감의 안동김씨 문중을 찾아 조사하거나 학술토론회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므로 천안시 의지에 달린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