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 비온 후 을씨년스럽던 하늘이 맑게 개었다. 옅은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사무실로 들어온다. 문용식 사관은 2층에 올라가 꽁꽁 싸매었던 물건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빨간 통이 눈에 띄는 구세군 자선냄비다. 열정을 뜻하는 빨간색. 하지만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예수의 피(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색. 자선냄비를 품에 꼭 안아본다. 이제 며칠 후(12월8일 오후 1시)면 천안 야우리 광장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갖는다. 눈이 오든 북풍이 오든 연말까지 24일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냄비를 달굴 것이다. 잘 부탁한다, 자선냄비야.
구세군 천안교회의 문용식(63) 사관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관의 정년은 65세. 이제 1년3개월이면 사관의 삶도 끝난다. 빨간 자선냄비와 함께 했던 삶. 올해가 마지막일지, 아님 내년에 한번 더 기약이 있을지 모르겠다.
‘구세군’ 하면 사람들은 ‘자선냄비’를 떠올린다. 1865년 영국에서 ‘실업자와 최하층 빈민구호’를 내세워 구세군교회를 만들었고, 1891년 미국 오클랜드 부두에 주방용 냄비를 걸고 ‘이 냄비를 끓게 합시다’ 라고 한 데서 ‘구세군 자선냄비’가 시작됐으니 127년의 역사를 묵묵히 걸어오고 있다.
구세군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빈민구호인 것처럼 각 구세군교회를 책임지는 사관의 삶도 청빈 그 자체다. 처음 월급 15만원을 받았다는 문 사관이 정년을 앞둔 지금 132만원을 받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최저보장 수준으로 지급되는 138만4000원(4인가구 최대급여)보다도 적다. 문 사관은 예전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우리는 구세군에서 처음 ‘청빈한 삶’을 서약하고 시작합니다” 하고 귀띔한다.
구세군 천안교회가 문을 연 것은 1936년. 문을 열고서 구세군 자선냄비도 역사를 함께 했다. 때론 냄비가 펄펄 끓기도 했지만, 최근 모금활동은 미지근한 형편도 못된다. 냄비는 끓어야 하는데 좋지 않은 경기여파가 사람들의 주머니를 꽁꽁 닫게 하고 있다.
지난해 24일간 하루 8시간씩 거리 모금활동을 해서 얻는 모금액이 1200만원이었다. 보통 두명이 두시간씩 모금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일반 노동력으로 따져도 ‘초라한’ 액수다. 가장 번화가인 곳인데도 모금액이 적다 보니 고민이 없지 않다.
“다른 모금기관에서 그러더군요. 자선냄비라는 좋은 브랜드를 가지고 너무 (모금이)적지 않냐고요.” 실제 구세군의 여러 모금활동중 거리모금활동(자선냄비)은 36%로, 이에 비해서는 53%를 차지하는 기업모금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문 사관은 모금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사랑의 자선냄비’ 자체다.
구세군 천안교회는 1936년 9월 문을 열고 그 해(아님 이듬해) 연말 자선냄비를 시작했다. 사람으로 치면 84세의 노인이 돼버렸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사랑의 종소리를 들으며, 또한 자선냄비 앞을 지나면서 온정을 느낀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마음을 나눈다. 그의 아버지가, 또한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종소리를 듣고 자선냄비에 돈을 넣었을 거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아직 ‘따듯한 사회’로 살아가는 것인 게다.
“자선냄비는 큰 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있는 한두푼을 넣어주세요. 그 동전들이 모여서 태산을 이루고, 가난한 이웃들이 따듯한 겨울을 나는데 도움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돕는 마음입니다.”
올해도 야우리광장을 비롯해 몇몇 거리에서 사랑의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자선냄비에 당신의 따듯한 마음을 넣어주세요’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