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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등록일 2018년10월0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삶이란 우리 인간에게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 걸까요.

생명체의 삶은 단순해 보입니다. 살아가기 위한 일들을 본능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루의 삼분지 일을 잠자는데 사용합니다. 나머지 16시간중 이분지 일을 일하고, 8시간중 먹고 씻는데 또다시 반을 씁니다. 남아있는 하루 시간중 남아있는 시간은 4시간.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TV도 보고, 쇼핑도 하고 수다도 떱니다. 참, 깜박 했군요. 주말에는 일하는 시간(8시간)을 버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생명체중 ‘사색’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능력 때문에 사람의 삶은 다른 것들보다 특별합니다. 우리의 삶마저 오로지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전부라면 모든 존재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색을 가진 사람만이 변화를 만들고, 각각의 유한한 삶이 하나의 거대한 몸짓으로 어디론가 걸어갑니다. 만약 신이 사색을 주었다면, “여기까지 와라” 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초적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어디까지 가면 신과 마주할까요. 신은 “잘했다. 그것을 건네다오” 할 겁니다. 우리는 무던히 가고 있지만 ‘무엇을’ 가지고 갈 지는 아직 모릅니다.

 


 

카타야마의 책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읽었습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일명 하쿠)가 사랑한 사람은 ‘아키’.

열다섯살에 같은 반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가까우니까 매력을 몰랐던 사쿠. 함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설레임이 생겼죠. 친구에서 연인으로... 사쿠짱 할아버지의 끝나지 않은 사랑이야기는 둘을 연결시켜주는 끈이 되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하쿠와 이키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연결끈으로 선택한 겁니다. 이 끈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도 등장하죠.

 

나는 아키의 분별있는 어조에 반발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가 화내는 것에도 호감이 갔다. 가슴속으로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관통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키에 대한 호감과 함께 처음으로 그녀를 이성으로 보고 있는 나에 대한 만족감이 가져다 주는 상쾌한 바람 같기도 했다.

 

“하쿠짱,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하고, 다른 사람과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줄곧 생각하는 것하고.. 어느 쪽이 행복한 걸까?” 아키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집니다.

함께 있으면 나쁜 점도 눈에 보이고, 하찮은 일로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몇십년 후에는 아무 감정도 남아있지 않게 돼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아키. 하지만 사쿠짱은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자. 10년 후에는 좀 더 좋아지고, 마지막에는 싫었던 점까지 좋아하게 되고, 백년 후에는 머리카락 한올한올까지 좋아하게 될 거라구.” 하쿠는 당연히 함께 사는 것을 택한 거죠.

 

여기서 저는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좋아하는 사람인지, 다른 사람과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줄곧 생각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지.. 내 행복을 위해 상대방의 행복을 빼앗는 것이 좋은지 안좋은지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다른 누군가를 함께 사랑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 사랑은 양분되는 것은 아닐까요? 같은 종류의 사랑은 나뉘어지고, 다른 종류의 사랑은 온전한 것은 아닐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하여질까요?

 

하늘에 남은 마지막 빛이 사라져 버리는 찰나에 우리는 키스를 했다.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보이지 않은 합의가 이루어져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벌써 입술을 맞추고 있었다. 아키의 입술에서 낙엽냄새가 났다.

 

아키의 생일은 12월17일. 그리고 사쿠짱은 12월24일.

사쿠짱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 아키가 없었던 적은 지금까지 단 1초도 없었어. 내가 태어난 이후의 세계는 전부 아키가 있는 세계였던 거야. 나한테 있어서 아키가 없는 세계는 완전히 미지의 세상이고, 그런 것이 존재할지 어떨지조차 모르겠어.”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군요.

아키 또한 “나는 사쿠짱이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사쿠짱이 없는 세상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어.” 합니다. 아키의 말도 맞군요.

둘의 대화는 두가지 선택의 길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키가 사쿠 없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과 사쿠가 아키없는 세상을 살아보는 것. 또하나는 아키가 사쿠없는 세상을 살아보는 것과 사쿠가 아키없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 결과는 이렇습니다. 아키는 사쿠없는 세상을 살아봤지만 사쿠 없는 곳으로 나아갔고, 사쿠는 아키없는 곳으로 나아가진 못했지만 아키없는 세상을 살아보게 된 것입니다. 둘 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네요. 삶은 슬퍼도 진격하는 전장터 같은 곳은 아닐런지요.

 

그리고 결국 아키짱은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기다리고 있을게. 너무 빨리 오지 않아도 돼. 여기에서 없어져도 난 언제나 함께 있으니까. 다시 날 찾아줘.” 하지만 하쿠가 할아버지와 나눈 이야기에 가슴이 아프네요. “할아버지, 난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해. 죽음 뒤의 세상이 있어 만나자는 건 다 거짓말이야. 그런 세상은 없어. 살아있는 사람이 꾸며낸 말일 뿐이야. 그렇게 위로라도 하려고...” 이 세상에서 함께 하지 못한 사랑, 뼛가루라도 함께 있고픈 할아버지와 그건 스스로의 위로일 뿐이지만 함께 한 순간이 시간이 흐름에도 버젓이 존재해 함께 한다는 하쿠. 이들에게 있어 ‘이후’의 삶은 씁쓸과 풍요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 사람을 태운 연기가 가만히 겨울하늘로 퍼져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은, 한참동안 그곳에 서서 연기의 행방을 눈으로 쫓았다. 연기는 검거나 하얗게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마지막 연기가 잿빛구름에 섞여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내 마음속까지도 완전히 텅 비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일을 사는 것이 하루하루 정신적인 자살과 부활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밤에 잠들 때에는 이대로 두 번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적어도 아키가 없는 세계에 두 번다시 깨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지만 아침이 오면 그녀가 없는 공허하고 차가운 세계에 다시 깨어나 있다.

 

어떤 하루를 택해도 그 앞의 하루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연속적인 시간은 내 안에 흐르지 않았다. 무언가가 계속되어 간다는 감각, 무언가가 자라서 변화해 간다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살아가는 것은 한 순간의 존재로만 있는 것이었다. 미래는 없고 어떤 전망도 열리지 않았다.

 

시간은 연속성을 가진 것입니다. 누군가가 ‘단절’됐다면 시간의 지배를 벗어난 영역, 초월적 자아가 됩니다. 존재속성은 시간이 통제합니다. 이를 벗어났다면 시간의 압박이 대단해지겠죠. 하쿠를 보면 시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수단으로 사랑을 택했습니다.

사쿠짱은 마지막 순간에 아키가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 줄곧 마음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만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며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하쿠를 위로하죠. “실현된 것이라면 인간은 금방 잊어버리지. 그런데 실현되지 않은 것은 언제까지고 소중하게 가슴속에서 키워간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들으니 많은 데에서 이같은 방식을 택하고 있군요. 동방불패가 절벽에서 떨어지며 영호충에게 한 말도 그렇고,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도, 신조협려에서도 그랬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 것. 죽어도 죽음을 부정하는 개념적 세계. 몸은 죽어도 개념을 탄생시킴으로써 살아가게 되는 것.

 

사쿠짱은 친구 오오키에게 말한다.

“꿈속에서는 내가 확실히 하늘을 날고 있어.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녀는 죽었다. 시신은 태워져서 뼈가 되었지. 그 뼈를 이 손으로 붉은 사막에 뿌리고 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있어.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아. 하늘을 날고있는 걸 부정할 수 없듯이 그녀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어.”

 

“할아버지는 어떻게 극복했어?”

할아버지는 하쿠에게 위로의 대답도 해줍니다.

“만약 내 쪽이 먼저 죽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무덤을 파서 뼈를 손에 넣는 일도 어려울 테고, 사쿠타로 같은 이해심 있는 손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뒤에 남겨짐으로써 그녀의 슬픔을 대신 짊어질 수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 쓸데없는 고생을 시키지 않고 끝난 거야.”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춤꾼, 홍신자도 그의 책에서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가 그 사람에게 가도록 도와주는 것. 그래서 내가 슬프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자신의 행위에 거부감이 들텐데, 그같은 불행을 원한다면 놓아주는 것이 의미없어. 그가 그녀에게 가도록 도와주고 그로부터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사랑 아닐까.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으로 얻어내는 것이 절대 아니야. 행복은 다른 많은 행복으로 만들어져야 해. 참은 참밖에 될 수 없지만 거짓은 거짓도 되고 거짓의 거짓으로 참도 된다고.

 

그리고 오랜 후

사쿠짱은 그의 교정에서 천천히 병의 뚜껑을 돌립니다.

 

바람이 불고 꽃잎이 흩날렸다. 꽃잎이 발 밑까지 날아왔다. 다시 손바닥이 있는 유리병으로 눈길을 돌렸다. 작은 불안이 가슴을 스쳐간다. 후회하지 않을까?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눈이 내리고 있지 않은가.

 

하쿠는 팔을 활짝 하늘에 반원을 그렸고, 뼛가루는 반원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가 흩어졌습니다. 뼛가루를 놓아준 것. 그것이 아키를 놓아준 것은 아닙니다. 이제 아키는 병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하쿠의 마음세계에, 이 세상의 온갖 곳에 충만해 함께 할 것입니다. 한 때 아키를 사랑했던 실체와 함께..

 

작가, 카타야마는 ‘사랑’이 무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거다 저거다 답은 없습니다. 사막을 벗어나는 길은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든 걸어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에 대적하는 유일한 생명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순간을 맛봐도 그 짜릿함이 시간이 만들어낸 삶 전체보다도 훨씬 자극적이며 유용합니다. 참고로 내가 하쿠라면 이런 사랑을 하고싶지 않습니다. 절대.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카타야마 쿄이치/

1959년 출생. 1986년 문학계 신인상으로 데뷔. 작품으로 <만월의 밤> <만약 당신이 그곳에 있다라면> <네가 모르는 세계의 움직임> <존 레논을 믿지마라> 외 다수.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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