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에 관한 명상, 묘원일기, 이순역 앞에서….
그리고 이번 제4집 <하늘에 뿌리 둔 나무>가 지난 5월20일 ‘오늘의 문학사’를 통해 출간됐다. 천안의 중견작가 이병석(62)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다.
1985년 천안문협 회원으로 시작한 작품활동, 1992년에 ‘문예사조’ 신인상을 받으면서 본격 데뷔한 시인은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과 역량있는 활동으로 2001년 충남문학 작품상에 이어 2012년 제11회 정훈문학상을 수상했다.
5월30일 천안 쌍용동 한 음식점에서 함께 구수한 청국장을 먹었다. 화사한 햇살이 이 시인 머리로 쏟아지고 있었다. 지역에서 작가가 책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 시인의 얼굴이 더욱 해맑았다. 6년만에 또다시 일을 치렀다는 기쁨이자 안도감이 배여있는 표정이다.
이번 작품 '하늘에 뿌리 둔 나무'는 그가 6년만에 내놓은 시집이다.
이번에 실린 작품수는 모두 80점. 최근에 쓴 작품도 있고, 지금껏 모아놓은 것들을 추려내기도 했다는 이 작가. 분식집같은 다양한 메뉴, 다양한 맛이 생각나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어. 주제가 다르고 메뉴가 다르다고 내 사고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한다. 그의 머릿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영근 사고들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의 ‘씩’ 웃는 모습까지 5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매양 똑같다.
그의 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한편의 시, 아니 몇줄의 싯구에도 ‘그의 것’임을 쉬이 알아챈다. 뻔히 보이는 그만의 사고(思考)가 또한 그 만의 필법으로 녹아있으니 말이다.
시에서 가장 많이 보여지는 건 바로 ‘인본(人本)’이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시집에도 넉넉히 들어있는 조미료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때가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지만 사람의 근본은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다. 순환하는 항성을 바라보는 태양의 마음처럼. 그 또한 시를 통해 추구하는 한결같은 메시지는 인본, 즉 사람이 갖추고 살아가야 할 기본적인 마음이다.
하늘에 뿌리 둔 나무/
그 게 사람이다/
땅에 씨 뿌리고 하늘에서 거두는 나무,/
그 게 사람이다.
이병석 시인은 ‘사색’으로부터 삶의 깊이를 더하고, 시의 깊이를 더한다.
꽃을 선물받기 보단 막걸리가 좋다는 ‘꽃보다 막걸리’란 시에서처럼 발효된 시간, 한번 스쳐지나가는 향기보단 막걸리 한잔의 깊은 곰삭임이 좋다는 그. 어느 시인이 사색을 마다할까마는 좀 더 열렬한 시위로 감추어진 삶의 단면을 들춰낸다.
몸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집을 떠나 한동안 요양이 필요했다. 거기서도 시는 놓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하다 처세를 배웠다.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병을/
적대시할 게 아니라 끌어안아야 된다는 것/
매일매일 쓰다듬어주다 보면 어느새/
병은 표독한 발톱을 접고/
슬며시 떠난다는 것/
생을 사는데 있어 끌어안아야 할 것이 어디 병(病) 뿐이겠는가. 주변의 모든 관계들이 얼르고 달래고 온화해야 하는 것을…. 순리를 역행하면 ‘화(火)’를 부를 뿐이다. 이순(耳順)으로 넘어가며, 불에 녹인 찰나의 시간과 물에 녹인 천년의 시간이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지명(知命)’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는가.
6월4일(월) 오후 7시, 천안 쌍용동 성당 지하강당에는 이 시인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구포 시인님을 사랑하는 후배들'이 출판기념회를 연 것이다.
조유정 천안문인협회 지부장은 "이제 시인으로서 달관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며 "지금 4집에 머물지 말고 10집까지 좋은 시 부지런히 내시라"고 덕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