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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남편의 학대와 폭력을 피해 딸 고은이를 보육원에 맡긴 유선미씨는 공장과 식당 등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며 일했지만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몸이 망가질 정도로 일했지만 오히려 빚만 쌓이고 있다.
“엄마! 언제 올 건데?…, 내일 올 거야?…, 엄마 빨리 와….”
“엄마도 고은이가 보고 싶어. 그런데 엄마는 지금 감기 걸려서 많이 아파. 그래서 당분간 못갈 것 같아. 엄마가 고은이한테 감기 옮기면 안 되잖아. 엄마 건강해 지면 갈게….”
유선미(43·가명, 온양2동)씨는 딸 고은이(8·가명)와 통화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은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기다리던 엄마는 끝내 입학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은이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새로 산 책가방과 새 옷에 새신을 신고 엄마 손잡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친구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 고은이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고은이는 이날따라 더 외롭고 우울했다.
유선미씨는 아산시 온양2동의 한 다세대주택 원룸에서 고은이와 통화했다. 방바닥에는 각종 청구서와 고지서가 한 가득이다. 한 쪽에는 진통제부터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약봉지가 수북하다. 유씨는 약 한 봉지를 입안에 털어 넣고 고은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무자비한 남편의 폭력, 살기위한 탈출
고은이는 현재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유씨가 술 취한 남편의 폭행과 학대로부터 고은이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유씨는 술 취해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네 파출소나 면사무소, 여관 등을 전전했다. 돌이켜 보면 술 취한 남편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심지어 고은이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남편의 주먹이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뱃속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얼굴과 팔과 등으로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도망치곤 했다. 인근에 친정 부모님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친정으로 도망가지 않았다. 혹시 부모님에 대한 행패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신이 몸으로 맞거나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고은이와 찾아간 곳은 쉼터 ‘테레사의 집’이다. 이곳에서 1개월간 머물다 다시 고은이를 맡아줄 보육원을 찾아갔다. 고은이를 잠시 보육원에 맡기고 2~3년간 떨어져서 돈을 모아서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닥치는 대로 강도 높은 노동…몸에 이상 발생
고은이를 보육원에 맡긴 유선미씨는 공장이나 식당 등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며 일했다.
인주면의 한 공장에서는 남성들도 힘들어 하는 파레트 옮기는 일을 수 개월간 했다. 지난겨울에는 김치공장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유씨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돈도 모아지지 않았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유씨의 몸은 무리한 노동까지 겹쳐지자 과로가 쌓여 점점 더 문제가 커졌다. 게다가 몇몇 업체는 월급도 제때 주지 않고 임금을 체불했다. 지난겨울에는 김치공장에서 일하다 과로가 쌓여 몸이 제 기능을 상실하기도 했다.
특히 고은이를 임신했을 때조차도 폭력에 노출돼 있었고, 출산 후에도 요양이나 관리를 하지 못해 복합적으로 문제를 키웠다. 유씨는 지금 당장 노동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가진 돈도 없고 오히려 빚만 쌓이고 있다.
남편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빚과 망가진 몸
고은이 아빠는 유선미씨가 두 번째 만난 남편이다.
남편을 피해 있는 동안 갑자기 경찰로부터 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경찰 부검결과 사인은 ‘알코올’ 이었다. 남편이 죽고 나서 유씨에게 남겨진 것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딸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이다.
유선미씨는 현재까지 밀린 임대료 120만원, 남편이 사용한 핸드폰요금 460만원, 1금융권 대출 2500만원, 2금융권대출 500만원, 건강보험료 체납액 100만원 등 4000만원 상당의 부채가 있다. 유씨는 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아산지소에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
지금당장 유선미씨가 살고 있는 집에서도 퇴거요구를 받고 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30만원의 임대료를 수 개월간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씨가 가장 최근에 일한 곳은 자동차부속 냉각장치를 만드는 기업이다. 이 곳에서 주말까지 계속되는 고된 작업으로 손목과 어깨에 무리가 왔으며, 취급한 물질로 인해 피부알레르기까지 발생했다.
유씨의 현재 건강상태는 어깨, 팔, 허리통증이 만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은이 임신 중 생긴 당뇨 합병증으로 말초신경장애와 몸이 저리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유씨는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꾸준한 노력을 했으나 번번이 좌절로 돌아왔다. 그러나 유선미씨는 빨리 몸을 완쾌시켜 돈도 벌고, 고은이를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한다.
유선미씨가 앞으로 고은이와 함께 살아가려면 지금 당장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
삶 자체가 시련의 연속, "너무 고통스러워요"
“배고파 우는 아기에게 분유 사 먹일 돈이 없어서 커피 프림을 타먹였요. 지금까지 저와 제 아이에게는 삶 자체가 시련이었던 것 같아요.”
유선미씨는 충남 당진의 가난한 농가에서 5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당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학업을 그만둬야 했다. 유씨가 여고시절 큰 장마로 수확할 농작물을 모두 잃어 가족들이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유씨는 고등학교 중퇴 후 서울 의류공장에 취업했다. 스무살 무렵 재단기술을 가진 15살 연상의 직장상사와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다 2명의 자녀를 낳은 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남편은 성실한 직장인이었고,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다 97년 IMF한파가 불어 닥쳐 회사가 어려워지자 남편은 실직했다. 수입이 없어지자 얼마 안 되던 예금통장도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남편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 버티면서 직장을 옮겨 다니며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했다. 그마저도 몇 개월씩 임금이 체불되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남편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돈 몇 푼 생기면 경마장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며 헤어 나오지 못했다. 분유 값이 없어서 아기들을 굶기는 날도 많았다. 배고파 보채는 아이를 달래려고 커피에 넣어먹던 프림을 물에 타서 먹이기도 했다.
유선미씨는 아이들 때문에 맞벌이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집안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어서 이혼을 요구했고, 첫 남편과 아이들과는 그렇게 이별했다.
서울의 고된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롭게 정착해 적응하며 살고 있는데 두 번째 남자가 나타났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수없이 많이 입은 상처를 달래주던 그와는 잘 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두 번째 남편은 매일 술에 취해 학대와 폭행을 일삼았다. 유씨의 삶이 다시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다.
유선미씨는 “지나간 날들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고통과 시련이었다”며 “앞으로의 삶은 고은이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