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길목엔 농민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있다. 이른바 영농철. 모내기철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다들 바쁜 모습으로 들녘을 손질하고 모판을 점검하며 모심기 차례를 기다린다. 3∼4월 가뭄에 양수기로 논물을 대는 곳도 보이지만 뿜어올리는 것만큼 빠져나가는 논물을 보면 쉽게 해갈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못자리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는 농민도 있다. 김철기씨(54·천안시 신방동).
김씨는 4월 중순과 5월 초순에 걸쳐 두 번이나 못자리판을 만들었지만 자라지도 못하고 누렇게 떠버린 모를 바라보며 이것이 ‘내 작품’인가 하며 씁쓸. 더구나 바로 옆, 파릇파릇 쑥 자란 남의 못자리판을 바라보면 더욱 초라해 맥주로 속풀이만 해댄다.
김씨는 ‘엉망’이 된 작품이 상토(床土?모판흙)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작년 것보다 값이 싼 상토 50포를 구입해 못자리판을 만들었는데 안됐어요. 관리부실인가 싶어 또다시 50포를 샀는데 마찬가지지 뭡니까.”
예년에도 계속 구입해 써왔던 상토가 올해 모 회사것으로 바꾸자 못자리판 전체를 버린 것이다. 주변 농민들도 이구동성 상토 문제로 단정지었다. 시 관계자도 현장을 살펴본 후 고개를 갸웃갸웃. 상토에 의혹을 제기했다.
상토를 공급한 모 회사는 그곳의 상토를 성분분석 의뢰해 놓고 “상토 문제는 아닐 것이며, 다만 거래농가의 피해를 좌시할 수 없다며 못자리 4백판에 대해 모심기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전용식(천안시 신방동)씨는 “만약 상토에 이상이 있으면 김씨 이외에도 피해자가 많을 것이니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이고, 김씨의 관리부실이라면 김씨를 비롯해 이 문제에 공감한 농민들의 오해를 풀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급회사측에서뿐만 아니라 김씨 측에서도 그곳 상토에 대한 성분분석을 의뢰, 그 결과로 시비를 가리기로 했다.
김씨는 벌써 모내기를 끝낸 옆 논을 바라보며 사뭇 고민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