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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의‘채식주의자’를 읽고

등록일 2017년10월1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육식주의자라는 말은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동성연애자라는 말은 있어도 이성연애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왼손잡이-오른손잡이, 여고생-남고생, 여의사, 여교사, 남자주부, 남자미용사 등 이 모든 호칭들은 보편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차별의 말들이다.

아마도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해 놓았을 터이다. 심지어 여고생이나 여교사처럼 그 숫자가 상대에 비해 적지 않고, 심지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교육과 사회생활에서 아주 오랫동안 배제돼 있었던 우리 과거의 모습이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렇듯 사고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겐 사실 묘한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인간관계의 친교를 상징하는데 모두가 모여 식사를 할 때 “전 채식주의자에요” 라고 말한다면 한순간 어색해지고 말 것이다.

워낙 우리사회가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성숙되지 않은 사회이기도 하고 사실 소수의 취향이나 성향을 잘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도 않다. 그런 사회는 사실 소수의 사람들에겐 폭력이 되기도 한다. 채식의 이유가 건강 때문이라면 혹은 식성이 그렇다면 그나마 받아들이기가 나은 편이지만 만일 동물의 생명도 우리와 같이 소중해서 안 먹겠다고 말을 한다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 뭐라고 해야 할지 뻘쭘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내가 틀리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이 틀려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동물농장’ 프로그램에서는 지하차도 옆 수로에 갇힌 작은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는 것을 시청했다. 그들은 오랜 수고와 위험을 아끼지 않고 기어코 고양이를 구해내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왔다. 패널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이렇게 동물의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저 출연자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지 않을까? 아마도 그들은 촬영을 끝내고 방송국의 구내식당에서 육계장을 먹거나 시원한 치맥을 마시며 친교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다시피 하는 소나 돼지, 닭들의 사육환경이라든지 도살장면 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면 과연 맛있게 그것들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삼겹살, 햄, 바비큐, 스테이크, 돈까스, 치킨이 실은 한때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숨을 내쉬고 먹이를 주는 주인을 알아보고 좋아하던 동물들을 이용해 만든 음식이란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애써 그것들을 외면하는 보통의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동물프로그램에서 작은 고양이 하나를 구할 때 우리 또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역시 보통의 사람이다. 이 동물과 저 동물의 생명의 존엄성은 다른가? 

우리가 우리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해야 한다고 합리화한다 해도 사실 모든 동물의 존엄성은 같다. 비싼 애완견은 귀하고 식용 개들은 처음부터 개고기였던 것처럼 달리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채식주의자는 영혜를 둘러싼 가족들의 각기 다른 세 개의 시선과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다. 지극히 예술적인 작품인 이 책의 내용을 문학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보자면 막장 싸이코 드라마지만 읽어나갈수록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품을 쓴건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별 문제없이 잘 살던 부부에게 문제가 찾아오고 그로 인한 부부관계, 가족관계가 모두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 문제라는 것이 영혜의 ‘뚜렷한 이유 없는 육식거부’이지만 사실 그 문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 그저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성인이 되어 잘살고 있었던 여자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문제를 일으켜 정신분열증을 일으켰으나 가족들이 매우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했다는 내용이 이 작품의 주요내용이다. 

채식, 식물, 꽃, 몽고반점, 젖가슴, 나무 이 모든 것들은 비폭력적이고 태초의 순수를 상징하는 것들이며 아마도 작가는 얼핏 비정상으로 보이는 영혜가 사실은 자연이며 순수이고, 정상으로 보이는 우리들이 어쩌면 매우 폭력적이고 비정상일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성욕이 예술과 영감 안에서는 그저 순수한 욕망이며 행위이지만 그것이 법과 도덕 앞에 서면 한갖 정신병자들의 행위일수도 있다는 것. 형부와의 예술행위에서 어느 정도 치유의 기회를 얻었지만 언니의 손에 의해 다시 정신병원에 끌려가면서 영영 치유의 기회를 잃고 마는 부분에서 인혜는 과연 본인의 행동이 남편으로부터 영혜를 구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동생에 대한 걱정과 사랑보다는 본인의 분노 때문에 동생을 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이 작품을 읽는 마음이 혼란스럽지만 이 전에 읽었던 책이 나무철학이었으니 이런 말도 해보고 싶다. 실은 식물들도 생존을 위해 엄청난 경쟁과 노력을 하고 있고 피를 흘린다. 다만 동물과 같이 소리를 내고 역동적이지는 않아도 우리가 살기 위해, 또는 먹기 위해 식물을 채취하고 그 열매를 함부로 따는 행위 역시 동물을 죽이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채식이 비폭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식물도 역시 생명이 있어서 그 역시도 치열한 생존의 세계에서 인간에 의해 강제로 제거되는 것일 뿐이다. 대신 사람을 살리고 또다른 생명을 살린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죽으면서 어떤 생명을 살리는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김혜정(독서동아리 더책 회원)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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