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경실련사무국장이 어느날 천안시의원이 됐다. 적정보수를 기대할 수 없는 시민단체 일을 한 가장이 10년 넘게 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갈아탄다는데 부정적 인식도 깔려있다. 정치활동을 못할 거라는 불신이 아닌, 시민단체 역량가의 부재 또는 단절적 문제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시민활동가가 정치인이 되는 건 어렵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정치인이 시민활동가로 돌아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시민활동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의원이 된 지 오늘이 정확히 세달이 되는군요.”
12일(수) 천안시청 커피숍에서 만난 정병인 사무국장은 약속시간에서 3분이 늦었음에도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지역구(직산, 부성1·2동)를 돌다보니 시간에 못맞췄다는 그는 무늬만 시의원이지 예전 사무국장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 4월 보궐선거로 의원이 되다보니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1년이 채 못남았다. 결국 몇 개월도 안되는 의정활동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조바심도 없지 않다.
“주된 의정활동이 시내버스이용활성화와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방지, 미세먼지 최소화대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데 몇 개월동안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가장 흔한 질문을 했다. 시민활동가로 있다 의원이 되니 ‘다름’은 있느냐고.
“다르죠. 현안에 대한 제3자로서의 활동과 실질적인 책임을 부여받은 의원으로서의 역할이 같을 수 있나요.” 당연하다는 투다. 그리고 비판을 던지는 것이 무엇보다 쉬운 일임을 고백한다. “의원이 되니 정말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요. 자료수집부터 검토, 지적, 대안마련 등 혼자서 하기는 만만치 않더군요.” 입법보좌관이 됐든 시민단체가 됐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생활한 시간이었단다.
의원으로 잠깐 있었지만 또한 시민활동이 시행정에 대한 견제·감시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시행정의 기능이 강화되고 효율성을 띌 수 있게 돕고 협력하는 것이 바탕이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한 견제·감시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시의원에게도 감시의 눈 보다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제안해 주고, 올바른 정책을 제시해주고, 사업이나 제안 등을 발굴해 알려주고 하는 등등을 해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의정활동기간은 비록 3개월을 맛봤지만 그 안에는 의회의 꽃인 ‘행정사무감사’도 끼여있었다. 첫 행감이었는데도 우수한 역량을 발휘했던 정 의원.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학습단계’ 수준으로 깎아내렸다. “지적하려면 상대(행정)의 잘못을 정확히 알아야 되겠더군요. 정확한 분석이 안됐는데 지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또한 비판을 하더라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점도 어렵더군요.”
10년 넘게 경실련에서 중책(사무국장)을 맡았지만 “외부에서 안 것은 피상적일 뿐이었다”는 그는 반드시 사실을 확인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의원이 되기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단체를 통한 지역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천안시민단체의 역사도 20년이 됐지만 아직 시민과 행정 속에 제대로 녹아있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다. 의식의 성장을 먹고사는 시민단체다 보니 비약적 발전을 꿈꾸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한걸음 한걸음 발전적 행보를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 시민단체가 현안문제를 짚고 행정의 잘잘못에 영향을 미쳐 독려하고 개선시켜가는 역할에는 정보·자료·참여 등의 한계가 있다. 원리원론적인 문제지적에는 앞서지만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총체적인 접근이 어려운 문제도 있다. 이에 대한 가교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며, 바로 ‘정 의원’ 자신이 자처해 풀어가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갖고 있다.
“어렵고 부담이 되더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시민단체 일과 의원의 일을 다 맛본 제가 ‘가교자’로서 분명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시민단체는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행정은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를 지향할때 어느 도시보다 앞선 발전적 의식문화를 갖게 될 것입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