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이름이 ‘오만클럽’이라구요? 오만(傲慢)한 클럽은 아니시죠? 호호호….”
어디를 가든 항상 듣는 얘기다. ‘오만클럽’은 천안과 아산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만든 평생학습공동체다.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납입하는 회비로 인문학 콘텐츠와 문화 컨덴츠를 만들어 시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운영한다.
오만클럽의 진짜 뜻은 나 오(吾), 찰 만(滿)으로 ‘나를 채운다’라는 깊은 뜻이 있다. 짝수 달은 역사, 철학, 예술 등 인문학을 학습하고 홀수 달은 연주회를 개최하거나 여행을 한다.
5월은 여행을 하는 달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가 여행하는 곳은 영주에 있는 부석사, 소수서원 그리고 무섬마을이었다.
여행은 사람들이 모여 버스를 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시보다 일찍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인원파악에서 누락된 참석자가 있었다. 정시에 도착한 분이 1킬로미터 가까이를 뛰어와서 버스를 타야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 일쯤이야’ 하고 웃어넘길 일이다.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각자 소개를 간단히 한 후 올해 <네가 아는 상식 그게 철학이야>를 출간하신 김의수 교수의 북 토크가 진행되었다. 사회적 이슈거리에 대한 주제로 다양한 생각을 가진 회원들의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단체로 떠나는 광광버스에서 독서토론을 하는 것은 오만클럽이기에 가능하다.
참석자들에게는 간식뿐만 아니라 여행노트가 나누어졌다. 여행노트엔 여행일정과 시가 20여편, 그리고 메모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두시간 반을 달려간 곳은 첫 여행지인 영주 부석사였다.
태백산자락과 소백산이 시작되는 곳에 둘러싸인 영주 부석사는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오래전 책으로 알게 된 곳을 직접 가보게 될 때의 설레임으로 첫 여행지에 도착했다. 가파른 계단을 숨이 차도록 올라가서 2층 누각으로 되어있는 안양루를 지나 우리를 처음 반겨주는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등이었다.
석등 뒤에는 넉넉한 품으로 서있는 무량수전이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려시대 목조건물로 기둥은 강한 배흘림이고 기둥위에는 주심포(柱心包)를 설치하여 마치 한그루의 단단한 나무가 든든하게 집을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기둥이 받쳐주고 있는 처마는 넓기도 하지만 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려 버선코 같은 유연한 곡선을 만들어 내었다. 우아한 처마끝의 곡선을 갖춘 가람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슬쩍 눈길을 돌리니 저 멀리 나지막이 보이는 첩첩이 쌓인 소백산줄기들이 더없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니 무량수전의 다른 이름이 왜 극락전이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간 곳은 소수서원이었다. 이곳은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교육기관이다. 나는 고등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소수서원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의 사교육이 만연해졌다고 나름의 이유를 들어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들의 억지스러운 논리에 소수서원은 사립기관이긴 했지만 그 당시 공교육을 대신한 것이고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유학의 전통을 이어왔으니 그것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지 않냐며 짧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옛 유학자들의 책과 서류들을 전시해 놓은 곳에 옛 선비의 하루를 생활계획표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다. 아들과 나는 그 계획표를 보고 질겁하였다. 밤 9시에 취침하여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제일먼저 하는 일이 머릿속의 생각을 메모하고 새벽 3시에는 문안인사와 사당배일을 하고 4시에 독서, 5시에 자녀 공부시키기, 6시에 독서…. 자기 전까지 독서와 자녀에게 독서지도와 학습을 시키고 글을 쓰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와 아들은 옛날에 태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마지막으로 여행한 곳은 우리나라에 있는 몇 안 되는 민속마을중 하나로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인 무섬마을이었다.
무섬마을은 ‘물위의 떠있는 섬’이란 뜻의 한글이름이라고 한다. 우리지역과 가까이 있는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처럼 그 곳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고 조상들의 고택에 서려있는 정신과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었다.
무섬마을은 외나무 다리로도 유명하다. 예천 회룡포처럼 이곳도 물길이 마을의 삼면을 휘감고 있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냇가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겨울마다 다리를 놓아야 했었다. 지금은 외나무 다리를 관광상품처럼 만들어 놓아서 언제든지 건널 수 있었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외나무다리 건너기는 고등학생 아들이나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줄줄이 건너는 중에 마주 오는 분들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고 무섭다고 하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한껏 웃음 띤 얼굴로 건너는 외나무다리에는 만나도록 되어있는 원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은 얇은 대화로 시작하지만 그 끝에는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늘 만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익숙한 곳을 보는 것도 아니니 여행은 그 낯설음이 큰 매력이다. 그 낯설음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여행자들에게 힘이 되어 자신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한다. 슬쩍 지나가 버린 봄의 한 가운데서 오만클럽의 영주 여행은 나와 아들 그리고 동행한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되는 추억을 만들어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