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시절. 젊은 혈기 하나만 믿고 살았어요. 95년쯤엔가, 어떻게 하다 알게 된 서각을 해보겠다고 조각칼 같은 걸 손에 쥐었죠. 벌써 오래 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군요. 틈만 나면 서울로 올라가 전시회를 누볐었죠. 스승 모실 돈도, 빽도 없었으니…, 무식하게 무조건 전시회를 다니며 눈으로 배운 거죠.
서각가, 조명호씨는 그렇게 과거를 회상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서각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다. 젊음, 혈기, 이런 게 세상 사는데 별 도움은 안된다는 걸 알기에. ‘평범한 가정’을 일구고 중산층 정도로만 살아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저 평범하게 사는게 좋은 삶이라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북면에 있던 작업장을 다가동으로 옮겼다. 아내와 사별하고는 지난해 혼을 쏙 빼놓고 살았다. 평생 함께 살 것으로 생각했고, 뒤늦게라도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소망했는데…, 먼저 가버린 것이다. 지인들이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현실로 돌아오는데 더욱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8일 동남구 차돌고개 2길16에 ‘조명호 서각창작공예연구원’을 열었다. 백석대 평생교육원 강사로 있는 그에게 145㎡의 이 공간은 수강생들의 교실이기도 하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연구원을 활성화시키는 것. 그럴려면 수강생들을 많이 받아야 한다. “이젠 임대료에 직원 인건비까지 벌어야 해요. 돈을 벌지 않으면 쪽박차기 십상이죠.” 농담처럼 내뱉았지만, 적지 않은 부담이 어깨를 짓누른다.
이제 믿을 건 오로지 ‘실력’이다. 그동안 좋은 평도 받았고, 무엇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서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가 ‘각을 본다’거나 ‘결을 안다’고 했다.
“예전엔 몰랐어요. 어느 순간 나무의 결을 알게 됐죠. 서각은 칼질이 나무의 결을 이겨야 해요. 칼질이 나뭇결에 치이면 안살아납니다. 그래선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없게 되요.”
예전부터 서각에 대한 공부는 게으름을 피지 않았다. 비록 공모전이나 전시회에 한번도 머리를 내밀지 않았지만 배우는 일에는 묵묵히 전념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몸도 약한 아내, 그리고 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 그야말로 경제적 사정은 밑바닥이었다.
그의 서각은 좀 더 특별하다. 현대서각도 아닌데다 전통서각은 더더욱 아니다. 한번은 서각작업을 하다 앞뒤로 구멍을 뻥 내버렸다. 마음까지 통쾌해지는 기분. 안된다는 규정도 없는데 왜 못했을까. 누구는 “그게 뭔 서각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예술은 창의력이다. 요즘 서각을 배우는 여성들은 딱딱한 서예체보다 캘리그라피를 응용하는 걸 좋아한다.
조 작가는 요즘 ‘얼굴’을 작품화하는 매력에 빠졌다. 사진보다 더 사진같게 정밀한 데다, 와닿은 느낌을 그대로 살려 심도가 깊다. 요리사의 칼로 비유하자면 조 작가는 베테랑요리사라 볼 수 있다.
협업한 작품 또한 색다르다. 서각창작공예연구원의 사무장이자 보조교사 역할을 하는 정은회씨는 민화를 배운 사람. 조 작가의 서각작품에 색을 덧입히는 작업을 통해 컬러풀한 작품을 얻어낸다.
“대부분 서각은 단순히 ‘글을 판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서각은 모든 것을 작품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각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현재 서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조명호 작가는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서각창작공예연구원을 통해 멋진 서각가로 배출되길 희망하고 있다.
문의: 010-5284-7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