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김준기 천안동남구문화원장 자리를 10년 채우고 물러난 지난 2월23일, 임시총회를 거쳐 조성오 부원장이 원장자리에 올랐다.
“후보자등록일이 일주일간 있었는데 당일날 보니 내가 단일후보였지 뭡니까.” 선의의 경쟁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던 조 원장은 잔뜩 들어간 어깨힘을 뺐다. 후보자가 없는 것이 섭섭한 건지, 다행인 건지 묘한 기분이었다.
조 신임원장의 장점은 ‘훨씬 젊다(?)’는 것일 게다. 전임원장과는 띠 차이가 난다. 김준기 전임원장은 두번을 했으니 법적으론 한번을 더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위수술도 했거니와 90을 바라보는 나이로 적잖이 부담도 있었나 보다. 열정이야 남부럽지 않지만, 매일같이 출근하고 일에 쌓여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듯. 무엇보다 김 원장이 그만 두게 된 것은 조 부원장 때문은 아닐까.
김준기 전 문화원장(왼쪽)과 함께
“김 원장님은 일 핑계로 허구헌 날 나를 불러내곤 했죠. 가끔 ‘나 이번만 하고 그만 할테니 당신이 해’ 하는 말도 했고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로, 조 원장이 맡는다면 안심할 수 있겠다 싶었나 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공무원 출신 조성옥 부원장이 4년간 동남구문화원을 맡게 됐다.
조 원장은 ‘해방둥이’로 태어났지만, 이후 평화를 갈망하던 마음과는 달리 한국전쟁 등으로 시대의 아픔을 경험했다. “제가 어릴 때 6·25가 벌어졌는데 조병옥 박사의 조카인 저나 가족들은 당장 죽음을 앞두게 됐어요. 그런데 그날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죠.” 서울에서 사는 작은아버지가 도망쳐와 다락방에 숨어지낸 이야기, 미국 군인들에게 초코렛 등을 달라고 “헬로, 헬로, 초코렛또, 초코렛또” 하며 구걸하던 이야기 등등. 조 원장은 봇물 터진 듯 옛 이야기를 쉼없이 꺼내든다.
어렵게 성장한 조 원장은 그런대로 서울에서 공고를 나와 공무원이 됐고, 천안시청에서 2003년 정년퇴임까지 했다. 고향 병천에서 초짜 농사꾼으로 지내다 2004년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아우내문화원장을 맡게 되면서 도와달라는 통에 ‘감사’를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감사를 맡다 이사로, 이사를 맡다 부원장이 되었어요. 토목을 전공한 제가 뭐 알겠어요. 그런데 문화원에 적을 둔지 십수년이 되니 어깨 넘어 배운 공부라도 좀 돼버렸지 뭐예요. 그래 어느 정도는 알게 됐고, 원장직에 도전하게 된 거에요.”
기존대로 해나갈 동남구문화원. 직원이라야 사무국장과 여직원 뿐이고, 예산이라야 쥐꼬리만해 그리 바쁠 일도, 큰 계획을 세울 일도 없다. “그래도 명색이 동남구문화원이잖습니까. 천안문화원이 없는 마당에 서북구문화원과 함께 천안문화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거예요. 천안시에서 이를 잘 생각해 두 개의 문화원이 활기차게 운영될 수 있도록 새로운 정비체계를 위해 힘써줘야 합니다.”
조 원장은 동남구문화원의 가장 큰 업무로 위인만화를 지속적으로 제작·배포해나가는 것과 신규사업으로 ‘천안의 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간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 위인만화로는 ‘유관순 열사’를 선정했으며, 내년에는 ‘태조 왕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해야 할 일들이야 많죠. 단지 예산이 없고 인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 것이지, 인구 65만의 도시에서 전통과 문화, 역사를 다룰 게 없겠습니까. 어찌 보면 아직 천안은 이에 대해 걸음마 수준인 걸요.”
조 원장은 ‘바쁠 때 천천히 가라’는 말처럼, 조급해 하지 않고 차분히, 주어진 여건 속에서 성실히 걸어가자는 생각을 가져본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