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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선한이웃요양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심석규(59·천안사랑의호스피스 회장)/ 봉사의 전초기지,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병원

등록일 2016년07월1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5월 선한이웃요양병원을 개원했으나, 이는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천안시 동남구 정골 2길 91. 거기에는 ‘종합복지원’을 소원했던 심석규 원장의 꿈이 무럭무럭 익어가고 있는 곳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심 원장 같은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20년을 넘게 꾸준히 한 우물을 파는 사람. 그가 가진 의료기술로 봉사에 매진하는 사람. 아직도 입양기관이나 의료선교를 꿈꾸는 사람 등등. “남들은 한가지 사업, 한가지 봉사도 어려운데…, 팔색조같은 사람”이란다.

1999년 10월 ‘천안사랑의호스피스’를 창립하고 시작된 봉사의 길. 배고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가 없길 바랐다. 삶에 모질지 못한 마음으로 낙오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의사의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의 생활은 상상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점심시간만 되면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러 달려가고, 부족한 점심시간은 찬밥에 ‘호르륵’ 물말아먹는 정도로 보냈던 세월. 돈을 벌기 위해 바쁜 게 아니라, 돈을 쓰기 위해 몸이 축났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삶. 늘 봉사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한이웃요양병원을 갖게 된 것도 속내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혼자서는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 있는데, 왜 욕심내느냐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면 답이 될까.

개원인사에서도 그같은 속내를 드러냈다. 그리고 찾아준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많이들 홍보해주셔서 선한이웃요양병원이 잘 되게 해달라고.
 

신장투석실.

이곳 요양병원은 250병상과 인공신장투석실을 갖춰놓고 있다. 또한 요양병원 울타리 너머에는 천안노인전문요양원 ‘평안의집’이 있다.

아내가 원장으로 있고, 자신이 이사장이지만 그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요양병원을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천안노인전문요양원을 섬기면서 환자의 상태악화로 엑스레이나 혈액검사 같은 정밀검사가 필요할 때 의료시설이 아닌 관계로 안타까움이 많았습니다. 또한 사랑의호스피스 사업도 의료기관이 아닌 비영리단체이기에 가난한 말기암환자들을 돌보는데 부족함이 많았죠.”

이같은 문제가 요양병원을 개원함으로써 많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봉사로 살아온 나날, 앞으로도 쭉~

“처음 호스피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무관심 또는 냉대 수준이었죠. 혼자라도 한다는 각오를  갖고 출발해야 했었죠. 호스피스는 의료기술과 함께 기독교적 구원을 전파하는 것이 주된 봉사임무이기에 의료인인 나로부터 봉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도움주는 분들이 늘어나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었죠.”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 나눔에 인색치 않는 그.

흡사 ‘아낌없는 나무’처럼 베품의 미학을 아는 심 원장에게 천안시는 2001년 천안시민이면 영예롭게 생각하는 ‘천안시민의 상’까지 수여했다.

심 원장의 어렸을 적 꿈은 고아원 설립자였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설립, 운영하는 것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꿈의 일환으로 사랑의 호스피스를 세웠고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해왔다.

심석규 천안노인전문요양원 이사장인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의사다. 충남도미술대전에 특선한 화가이면서 색소폰도 곧잘 부르는 그. 거기에 목사이기도 하다.
 

인턴시절 ‘인간의 죽음’이란 책에 감명을 받고 가정의학과를 택했다는 그. 평생 봉사자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뿌리를 가슴 깊이 박아둔 계기가 그때였다.

1994년 충무병원 옆에 남천안제일의원을 개업했고, 준비과정을 거쳐 98년 호스피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랑의 호스피스’란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99년에는 구성동 변전소 뒤편에 ‘평안의집’을 짓고 보금자리로 삼았다. 한발 더 나아가 천안노인전문요양원 시설의 이사장으로 1인3역의 숨가쁜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부터 3년간 신학공부에 매진했다. 남천안제일의원을 그만두고 친구가 운영하는 큰사랑요양병원(성정동 소재) 원장으로 근무하며 일주일에 3일 신학수업을 듣느라 쉴 수 있는 주말도 반납하며 살았다.

교수나 총장, 고위공무원 등 다양한 사람들 30여명이 모여 만든 ‘마중물’도 현재진행형.

마중물은 매년 2000명 넘는 해외입양아를 우리 손으로 입양해 키우는 목표로 삼고 있으며, 천안에서는 ‘해피폼 공동생활가정’을 운영, 2명의 교사가 5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기도 하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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