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거리. 바람은 화난 사람처럼 거세게 분다. 가로수의 가지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주파의 소리를 주고받는다.
항상 초여름 찾아오는 태풍이 올해는 선발대라도 보낸 걸까. 위협스런 날씨에 사람들은 집밖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3일 오전 11시경의 천안 명동거리.
“얘들아, 다 먹었으면 빨리 가자. 연습할 시간이 별로 없어.”
채필병(극단 날개) 대표는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배우들을 재촉한다.
명동거리 오렌지 씨네스타 건물 옆 ‘미리내’는 그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술집에 모여 아침식사로 빵을 먹고 속을 달랜 배우들이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바깥날씨가 심상치 않은데도 채 대표는 배우들을 끌고 나간다.
그들은 100미터쯤 떨어진 명동거리 한 켠에 자리잡은 르씨엘 건물 앞 야외무대로 이동했다.
골목길을 마주보고 무대와 객석이 있지만, 제대로 갖춰졌다 생각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조촐한 무대. 채필병 대표는 배우들을 이곳 무대에 세우고 리허설을 시작한다.
이들이 준비하는 연극은 ‘우리동네 명동’이다. 해마다 명동거리에서 개최되는 ‘판페스티발’에 올릴 연극무대로, 이번에는 채필병 대표가 직접 명동상인들의 이야기를 대본화해 연출을 맡았다.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무대는 무대. 제대로 하지 않으면 관객이 그 수준을 금방 알아차린다.
전에도 작품은 좋았지만 주인공 여배우의 실수가 장장 일곱번이나 있어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도 있었다. 어려운 작품이었기에, 또한 첫무대였기에 그런 점이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당일 공연을 본 관객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동네 명동’에 출연하는 배우는 김지원, 최광남, 한윤경, 송미숙, 이수경. 이들 다섯명이 명동상인 역할로 엮어내는 에피소드는 어떤 모습일까.
나마파, 부동산의 김여사, 고고옷가게를 하는 총무, 채 대표 가게이름을 딴 미리내의 방마담, 이들 네명이서 새로운 상인회장 선거를 위해 똘똘 뭉쳤다.
이들의 목적은 기존의 상인회장 이대팔 회장을 몰아내는 것. 선거과정에서 여러 사건이 생기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주최측에서)이번에는 명동이야기로 풀어보라 하더군요. 고민해 보니 명동거리 상인들의 이야기가 좋겠더군요. 이로 인해 상인들이 좀 더 친밀해지고, 명동거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심도 높일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천안연극협회장을 역임한 채필병 대표는 천안연극의 산 역사며 산 증인이다.
지금도 현역배우로 뛰는 베테랑 연극인으로, 또한 극단 날개 대표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극단 날개를 운영한 지도 강산이 두세번 바뀌었다.
연극의 불모지인 천안에서 ‘극단 천안’과 함께 천안연극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대표극단이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열악하기는 매한가지. 월급쟁이로 따지면 고작 ‘한달에 몇십만원’ 정도로 근근한 생활, 게다가 극단 날개 또한 일(연극)이 있을 때만 뭉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래도 평생을 연극쟁이로 살아왔다는 자부심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 점에서는 행복한 사람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