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느껴지는 인상’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첫인상’에 관한 정의다.
심리학에 ‘초두효과(primary effect)’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상반되는 정보가 시간간격을 두고 주어지면, 앞의 정보가 뒤의 정보보다 인상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평소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지각을 하면 ‘집안에 불가피한 일이 있었거나 어제 야근을 해서 그랬을 거야’ 라고 지각(遲刻)이라는 부정적인 정보를 스스로긍정적인것으로 바꿔버리는 경우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야근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사고를 저지르고 수습하려는 건가? 아니면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는 거 아니야?’ 라고 긍정적인 정보를 부정적인 것으로 바꿔 버리는 경우이다. 사람들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기 쉽다는 이론이다.
이런 효과가 생기는 것은 사람이 심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지각(知覺)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심리학적 분석이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처음 받았던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 정보가 들어오면 그 새로운 정보를 바꾸거나 제거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시즌이다.
예비후보자홍보물, 명함, 선거공보, 현수막 등 각종 선거운동 인쇄물이나 시설물들이 올해만큼은 계절의 여왕이 봄이 아니고 바로 자신들이라며 한껏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홍보물의 출입문이라 할 수 있는 첫째 면에는 후보자의 사진이 약방의 감초처럼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왜냐하면 선거운동에있어 후보자의 이미지는 유권자의 선택신경에 커다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후보자의 첫인상을 형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전 지방선거 시즌에 고향인 시골에 갔었을때 경험했던 일이다. 연륜이 높은 마을어르신이 후보자들의 선거공보를 넘겨보시며 하는 말씀 “누가 누구인지 모르것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어! 음…, 그래도 이 사람이 제일 낫구먼. 피부도 하얗고 눈도 선하게 생겼고….” 그리고 유유히 마을 어귀로 사라지시는것이었다. 그 어르신이 투표소에서 누구를 선택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심리학의 초두효과 이론을 감안하면 그 어르신은 그 피부가 하얗고 눈도 선한 후보자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근거없는 예상일 뿐 모든 유권자가 다 그렇다는 섣부른 일반화는 삼가해 주시기 바란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정책선거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이러한 이미지 기준의 후보자 선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각종 정보전달 매체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실에 있어서 이미지 중심의 선거운동 방법이 그 활동영역을 넓히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읽는 능력은 탁월하나 문장 해독능력은 하위권이라는 한국인에 관한 통계의 현실 앞에서 이미지 중심의 선거운동은 스마트폰에 은밀히 숨겨진 마약과도 같아서 우리 유권자에게 이미지 만능중심의 선택이 전부라는 그릇된 환상을심어줄 수도 있다.
첫인상, 즉 이미지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전달매체는 ‘방송’이다. 이 흔들림 없는 원칙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것이 선거방송토론이라는 후보자의 선거운동 방법이다. 일례로 제1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시 운영한 후보자토론회 국민평가단의 설문조사결과 지지후보자 선택시 영향을 미친 선거운동방법은 후보자TV토론 29.3%, 선거공보 26%, 거리에서의 연설 및 활동 16%, 주변사람들 이야기 13%, 선거벽보 및 현수막 11%, 기타 5%로 나타나 후보자TV토론이 지지후보자 선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상으로 보면 선거공보와 후보자 TV토론의 영향력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이나 선거공보의 반복학습 가능성이라는 이점과 후보자 TV토론의 시간적 제약성(1시간 정도)이라는 단점을 감안한다면 후보자 TV토론의 실질적 영향력은 훨씬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혹자는 후보자 TV토론을 후보자 TV광고라고까지 말한다. 광고라는 것은 이미지 어필을 하기 위한 전쟁터인데 공익적 성격이 강한 후보자 TV토론도 그러한 성격이 강하다고 정의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선거방송 TV토론에 있어 방송준비(스타일 연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복장에 있어 너무 진한 검정색과 흰색, 지나치게 밝은 색은 피하라” “넥타이, 스카프 등을 선택시에는 잔 체크무늬나 방울무늬는 절대 금물(방송화면에 떨림현상이 일어남)” “달걀형, 사각형, 원형, 역삼각형의 얼굴 형태에 따라가장 적합한 헤어스타일을 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인용문은 후보자를 위한 선거방송토론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역시 준비 안된 스타일은 토론회의 필패(必敗)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은연중 암시하며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유권자는 반드시 유의해야 할 내용이 있다. 후보자 TV토론에 있어 이미지 형성은 토론회의 일부효과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선거방송토론이란 각종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정치 혹은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정책적 대안들을 가지고 상호토론을 함으로써 타당성과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다.
후보자 TV토론을 바라보는 이미지 중심의 시각으로 인해 선거방송토론의 정의와 목적이 잘못 해석되어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이 주(主)이고 이미지는 객(客)일 수밖에 없다.
인형같거나 조각같은 얼굴, 오색찬란한 복장은 걸그룹이나 드라마 속 연예인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선거방송토론의 시청을 위해 TV를 켜는 순간 3분만 투자하자! 그 후보자의 이미지에 대한 판단은. 나머지 방송시간은 선거방송토론의 정의와 목적이라는 필터가 내 눈앞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이미지로 시작했으나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이 기억세포 속에 온전히 자리잡게 할 수 있는 유권자의 시청기술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일정의 끝무렵에 진행되는 TV토론회를 통해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길러봄으로써 심리학에서 말하는 첫인상의 초두효과를 과감히 극복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방송토론으로 인해 후보자의 첫인상이 극복되어지는 미두(尾頭)효과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