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2일(월)이 정월대보름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습이지만, 대보름날은 부럼깨물기, 귀밝이술 마시기, 더위팔기 등으로 이른 아침부터 왁자지껄했다.
이날 새벽 밤·잣·호두 등 부럼을 자신의 나이 숫자대로 깨문다. 첫번째로 깨문 것을 문 밖으로 던지며 “부럼이요” 하고 소리지르면 1년내내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했다.
귀밝이술은 데우지 않은 청주로, 아이나 부녀자 할 것 없이 모두 조금씩 마셨다. 이 술을 마시면 귀앓이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좋은 소식만 듣게 된다고 했다.
또한 더위팔기는 것이 있어, 해가 뜨기 전에는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예” 하고 덥석 대답하면, 상대방은 “내 더위 사가거라” 하는 소리를 지른다. 이것을 ‘더위팔기’라 했는데, 더위를 판 사람은 그 해 여름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농촌지역만 하던 풍습도 있다.
농가에서는 농사일에 큰 몫을 하는 소가 이날만큼은 사람대접을 받았다. 푸짐한 밥과 나물을 상처럼 차려서 소에게 아침을 주는데, 소가 밥을 먼저 먹으면 그 해 풍년이 들고 나물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반면 개는 하루종일 굶겼다. 보름날 개에게 밥을 주면 개가 마를 뿐 아니라 집안에 파리가 꾀인다고 했다.
한낮이 되면 마을은 풍물소리와 함께 줄다리기나 석전(石戰) 등 편싸움으로 떠들썩해진다.
특히 정월풍습중 가장 과격한 것이 ‘석전(石戰)’이다. 두 동네사람들이 몽둥이나 돌을 들고 패를 지어 맞서싸우는 것으로, 사상자가 생겨나도 멈추지 않고 어느 한 편이 달아나야만 끝이 났다.
이날 하루종일 요란하던 풍물소리가 멎고 달이 막 떠오르기 시작하면 짚을 쌓아 만든 달집에 불을 놓았다. 마을사람들은 달집 주위를 돌면서 덕담을 나누거나 활활 타는 불길모양을 보고 그해 동네 운수를 점쳤다.
달집에 불이 붙는 것을 신호로 논·밭둑에 쥐불을 놓아 액을 쫓는 ‘쥐불놀이’도 빠질 수 없는 대보름행사의 하나다. 그리고 달이 뜨는 것을 맨 먼저 본 사람이 총각이면 장가들고, 처녀면 시집가고, 아이 가진 사람이면 아들을 낳는다 해서 모두들 달을 먼저 보려고 야단법석을 떨기도 했다.
또한 대보름날 밤에는 거리에 나가 다리를 밟는데, 이를 ‘답교’ 또는 ‘다리밟기’라고 했다. 어린아이는 어른 어깨에 무동을 태워 건너기도 했다. 남녀노소 모두가 집 밖으로 나오므로 마을이 온통 흥청댔으며, 풍물과 술자리가 곁들여져 흥을 돋궜다. 큰 다리 위를 자신의 나이 수대로 건너야 1년동안 다리에 병을 얻지 않는다고 했다.
설에서 대보름까지는 여러가지 즐거운 놀이를 하는 축제기간이었다.
이때 아녀자들은 널뛰기를 했다. ‘정초에 널을 뛰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박힌다’는 말이 있는데, 집안에만 있던 여자들로서는 운동부족에서 오는 질병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울 안에 갇혀 살다시피 한 부녀자들이 담장 밖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정초에 가장 널리 성행하는 것은 윷놀이었다. 윷을 놀 때 한 가락은 높이 올리고 세 가락은 낮게 굴렸다. 연은 섣달부터 날리기도 했지만,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연날리기의 본격적인 시기이며, 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았다. 대보름날 종일 연을 날리다가 저녁나절이 되면 그 연에 ‘액(厄)’자를 쓰고, 얼레에 감긴 실을 다 풀어 멀리멀리 날려버렸다. 그해 재앙을 연에 실어 날려보내는 것인데 이를 ‘액연 띄운다’고 했다.
이밖에 ‘승경도(陞卿圖) 놀이’라는 것이 있는데, 넓은 종이에 관직명을 질서있게 적어놓고 누가 먼저 최고의 관직을 차지하느냐를 겨루는 내기이다. 이 놀이는 주로 양반집 아이들이 즐겼던 것으로, 놀이의 성격이 낮은 데에서 높은 위치로 오르게 되는 것이므로 정초에 1년 운수를 점치는 방법으로도 사용됐다.
16일은 ‘귀신붙은 날’이라 해서 바깥출입을 삼갔다. 이날 남자가 일하면 1년 내내 우환이 있고 여자가 일하면 과부가 된다 하여 하루종일 일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각종 행사와 놀이로 들뜬 마음과 피곤한 몸을 이날만큼은 푹 쉬는 것이다.
자료제공: 천안시 역사문화연구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