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최고기록 3시간8분22초’.
천안공무원 출신 이기혁(71)씨가 환갑을 바라보는 2003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에서 세운 자신의 풀코스 마라톤 최고기록이다. “그때 이후 욕심을 냈다면 2시간대가 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건강하자고 시작한 운동을 무리하면서까지 달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당시 기록은 100미터를 26초78로 일정하게 뛰어야 나올 수 있는 기록으로, 일반 장년층은 단순히 100미터를 전력질주해야 가능한 속력이었다.
그런 그가 14일(일) 한국마라톤협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주최한 ‘제13회 동계풀코스마라톤대회’에서 자신의 300회 마라톤 완주패를 목에 걸었다. 기록은 3시간46분59초. 1999년 첫 마라톤을 뛴 후 16년3개월만이며, 이는 평균 세달에 두번씩 완주해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초기때 1년에 한번 뛴 적도 있었지만 점차 참가횟수를 늘려나가, 연간 서른다섯번을 뛴 적도 있었습니다. 300회는 천안에서 흔치 않은 기록이지만, 전국에서는 200명이 넘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천번을 넘긴 분도 있다 들었습니다.”
300회에 대한 소감을 묻자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지금이 한창때인데 무슨 소감이냐”고 손사래를 친다. 마라톤마니아로서의 그의 목표는 85세까지 건강하게 뛰고 싶다는 것, 다른 욕심은 생각해보지 않았단다.
“건강해서 달리는게 아니고, 달리니까 건강한 겁니다”
뜀박질이라곤 해본 적 없던 그가 1999년 새해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공자는 나이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지만, 범인(凡人)이 어찌 하늘의 뜻을 알까. 그냥 내 몸상태나 알고 건강이나 챙기자 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무리가 가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달리기’를 택했다. 오랫동안 아픈 아내를 보면서 ‘내가 건강해야 아내와 가족의 행복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1999년 10월24일 그의 나이 55세때 첫마라톤인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51분25초의 기록을 얻었다. 1만2704명중 687위였다. 그해 꾸준히 운동하면서 3월과 5월 하프마라톤을 뛴 것이 전부, 건강을 위한 달리기지만 좋은 기록을 보자 내심 욕심도 생겨났다.
태조산 청송사에서 구름다리 지나 돌아나오는 8㎞를 매일 뛰다시피 했고, 2007년도부터는 월봉산쪽에서 15㎞씩을 뛰었다. 꼼꼼히 기록해온 노트에는 2015년 말까지 ‘4274번’의 달리기가 적혀 있다.
인대가 늘어나거나 뒷꿈치가 아픈 적은 있었지만 300회 마라톤 도전에 단 한번도 기권한 적이 없다. 게다가 ‘4시간대’조차 벗어난 적도 없다. 건강을 위해 달린다는 명분은 그대로 유효하다.
“천재가 노력하는 자를,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3시간 싱글 뛴 후 2시간대를 욕심냈다면 지금의 300회 완주도 없었을 겁니다.”
가장 욕심이 싹틀 때 ‘기록은 포기하고 즐기자’는 쪽에 생각을 맞췄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달리다보니 여러 대회에서 연령별 1위 기록도 갖게 되는 등 60회 넘는 상을 받을 수 있었고, 조선일보 주최 마라톤의 첫 명예의전당에 입성하기도 했다.
가장 인상깊은 추억도 있다. 2002년, 그의 나이 58세때 세계4대마라톤대회로 손꼽히는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한 것이다. 당시 기록은 3시간29분15초. 완주했을 뿐만 아니라, 나름 좋은 기록도 챙겼다.
“요즘도 매일 하루 10㎞씩은 달립니다. 앞으로도 마라톤에 출전하겠지만 더욱 무리하지 말고 뛰자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85세를 목표로 뛸 겁니다. 그 이후에는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힘 닿는대로 계속 뛰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