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교수(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종양혈액내과)
드라마나 영화에서 암치료 모습을 미화하거나 과장해 표현하는 것을 보면 종양혈액내과 의사로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암치료에 관한 정확한 사실들을 쉽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이 앞선다. 지난 호 충남시사에 그런 뜻에서 기고를 했고, 한 가지 더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추가 기고를 하게 됐다. 지난 호에는 암환자의 심리적 고통에 대해 다뤘는데 암환자와 가족들의 올바른 치료결정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번 호에는 진료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설명하는 암 치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추가한다.
암은 크게 고형암과 혈액암으로 나뉜다. 고형암은 특정 장기에서 시작돼 커지다가 전이되는 암이다. 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과 같은 대부분의 암이 여기에 해당된다. 혈액암은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혹은 악성림프종 처럼 혈액(조혈)세포가 악성화 된 경우다. 고형암의 경우 수술이 가능하면 수술을 하고, 수술이 불가능하면 완치목적의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생존기간연장과 완화 목적의 항암화학요법(항암효과가 있는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치료법)을 시행하게 된다.
혈액암은 위, 대장 같은 특정 장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화학요법으로 완치목적의 치료를 한다. 완치목적의 항암화학요법은 항암제의 독성에 대한 우려보다는 치료효과에 더 중점을 두고 치료계획을 세운다. 증상 완화나 생존기간의 연장을 목적으로 하는 항암화학요법의 경우는 항암제의 효과뿐만 아니라 독성도 중시해야하기 때문에 환자의 나이와 동반질환 등을 고려해 치료계획을 세운다.
한국인에게 흔한 위암, 대장암 등은 1~3기로 병기를 구분하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 4기로 분류한다. 수술로 완전 절제가 가능하면(1~3기, 4기 일부), 수술이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다. 수술 후 CT검사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잔존 암을 없애고, 재발을 줄이기 위해 보조적 항암화학요법도 시행한다. 진단 당시 많은 암들이 이미 전이되어 완치목적의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항암제를 선택하게 된다.
항암제는 최근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항암제로 선택할 수 있는 약은 10여 가지에 불과했고, 부작용에 비해 기대 효과가 미미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4기암의 경우, 말기 암으로 묘사하면서 3~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하는 장면도 90년대 후반까지는 틀린 것이 아니다. 최근 세포독성항암제(일반적인 항암제로 인체의 거의 모든 세포에 독성이 있음)는 물론 표적치료제(특정암세포 작용하도록 만들어진 항암제) 수십 가지가 개발되면서 이제는 4기 암환자도 모두 말기 암환자가 아니다. 예상 생존기간을 예측도 항암제의 효과에 따라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차이가 나고 있다.
면역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 10여 년간 면역요법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가 2~3년 전부터 다양한 암에서 효과를 보이는 면역요법 약제가 개발되면서 면역치료법 연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향 후 수년 내 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항암치료를 시행하는 종양혈액내과 의사로서 최근 10여 년간 이어지고 있는 항암치료제의 지속적인 발전이 반갑다. 일부 암에서 항암제를 복용하면서 수년간 별 문제없이 살아가는 암환자들도 적잖게 경험하고 있다. 물론 최신 항암치료, 특히 표적치료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도 경계해야한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암으로 진단되었다고 해서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적극적인 자세로 주치의와 상의하고, 자신에게 맞는 치료방법을 선택해 적절히 치료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