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교수(순천향대학교 천안병원 종양혈액내과)
암과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는 단어는 죽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넘게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가 암이다. 2014년에도 암사망자는 76,611명으로 전체 사망원인 중 약 29%를 차지했다.
암환자를 전문으로 보는 종양혈액내과 의사로 10년째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죽음을 앞두고 절망에 빠진 환자를 보는 것이 정말 힘들 것 같다’는 말이다. 의사의 사명과 보람이 환자를 살리고, 병을 치유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완치가 불가능한 환자를 임종 직전까지 본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며,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는 일이라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의사가 된 것을, 특히 종양혈액내과 의사가 된 것을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은 없다. 암환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 삶을 연장시켜 주는 일이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도움이겠는가. 그 고통과 공포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주치의일 것이다.
주변에 암환자가 있다면 누구나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난감해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마음이라면 우선 암환자의 심리상태는 좀 알아야 되지 않나 싶다.
1969년 Elisabeth Kbler-Ross라는 의사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연구해 정립한 ‘슬픔의 5단계’는 지금도 암환자의 심리단계를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인용된다.
1단계는 ‘부정否定’이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여서 오진을 의심하기도 한다. 2단계는 ‘분노’의 시기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에 나에게 발생했는지 한탄하고, 의사나 가족 등 주위사람에게 분노를 표현한다. 3단계는 ‘타협’의 시기로 제한적인 수용을 한다. 즉, 암에는 걸렸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라든지 혹은 죽더라도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는 살 것이라는 등 타협을 한다. 4단계는 ‘우울’의 단계다. 실제 진행과정에서 다양한 힘든 일들이 생기면서 사회적으로도 고립되고, 우울해진다. 이 때 가족과 의사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마지막 5단계는 ‘수용’의 단계. 암 상태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성숙된 자세를 취한다. 물론 모든 암환자가 이런 5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심리단계를 이해하고 암환자를 바라본다면 좀 더 암환자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비롯된 행동이나 말에 상처받지 않고, 암환자를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암환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했다면, 이제는 암치료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아직도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은 완치가 불가능한 전이성 암으로 진단되면 고통스러운 암치료를 받을지 아니면 암치료를 받지 않고 그냥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일단 암 치료를 피한다고해서 심리적, 육체적으로 편안해지지 않는다. 암 진단 후 슬픔의 5단계 중 바로 수용의 단계에 들어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각 단계별로 심리적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게 된다. 육체적으로도 암 관련 증상이 임종까지 지속적으로 악화되기 때문에 치료는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
암치료도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표적치료제들이 개발되면서 치료의 독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치료로 인해 암이 작아지면서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암치료 기술은 해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새로운 치료제도 계속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암진단을 받으면 암치료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아 삶의 질을 개선하고, 생존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각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암을 바로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려는 자세가 바로 암환자를 위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