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의 독립운동가 연기우 선생의 공적비.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과 국가보훈처, 광복회는 연기우 선생을 2015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8월 한 달간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여기서는 연기우 선생 공적비 등 관련자료 18점이 공개된다.
연기우 선생은 경기도 삭녕(朔寧, 현 파주시)에서 태어나 일찍이 군에 입대하여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 부교(副校)로 복무했다. 1907년 8월 일제가 강제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자 이에 격분한 선생은 강화진위대 군인들을 이끌고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군대해산 이후 의병항쟁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선생의 의진을 비롯한 주요 의병부대는 이인영(李麟榮)을 중심으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를 결성했다. 전국 각지에서 경기도 양주로 모여든 연합의진은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해 일본군과 4개월 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선생은 대대장이 되어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했고, 부상을 입고 체포됐다가 탈출했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가 해산되자 선생은 경기․황해지역 의진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임진강 일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큰 전과를 올렸다.
일제는 1910년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해 전국적으로 의병 탄압에 나섰다. 경기․황해․강원지역에서 활동하던 연기우 선생의 의병부대도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이 어려워졌다.
이후 1911년 가평에서 일제 헌병대와 전투 중 전사했다는 설과 1914년 인제에서 부친과 함께 체포돼 순국했다는 설이 있다. 정부는 의병전쟁에 헌신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정리/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