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양한올고 1학년4반 학생 모두가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친구를 위해 스스로 지화를 배웠다. ‘I Love You(사진 속 수화의 뜻)’. |
청각장애 친구를 위해 반 전체 학생 스스로가 지화를 배워 눈길을 끈다.
온양한올고 1학년4반 학생들이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염유림 학생과 소통하고자 한글 자·모음을 손가락으로 표기하는 지화를 배워 우정을 전하고 있는 것.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다. 담임교사로서 수화를 하지 못해 유림이와 소통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고, 친구들과 조금 다른 유림이가 은따(은근히 따돌림)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 했다.”
1학년4반 담임 이지민 교사에 따르면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진 유림양은 부모와 세 자매 모두 듣지 못하는 농아다. 태어나서 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해 소리 내는 법을 모르는 유림양과의 유일한 소통방법은 수화. 그러나 수화는 영어와 일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처럼 또 다른 언어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암기해 바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음성언어처럼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 수화를 능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배우듯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해서 매 수업시간 마다 수화통역사가 참관해 유림양에게 수업내용을 통역해주고 있다.
“학기 초, 학생들에게 존중과 배려를 강조했다. 유림양을 꼬집어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인데, 학생들 스스로가 유림이를 위해 지화를 배워 기특하기만 했다.”
대부분의 1학년4반 학생이 방과후 수업으로 수화반에 들고 싶어했지만 단 두명 밖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를 향한 우정은 행복 바이러스처럼 퍼져갔다. 두명의 친구가 여덟명의 친구에게, 여덟명의 친구가 반 전체 학생들에게 지화와 수화를 전파한 것이다.
“스승의 날이었다. 학생들이 각 담임교사에게 보내는 영상편지가 상영됐는데, 재미있고 독특하게 촬영·편집한 영상에 모든 교사가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1학년4반 아이들의 영상이 나올 때에는 가슴 한 편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나오더라. 반 아이들 모두가 한데 모여 ‘선생님, 저희를 항상 바른길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수화와 함께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이다. 참말, 기특한 녀석들이다.”
이 교사는 2학기부터 반 학생 모두가 수화를 배울 수 있도록 수화 초급반을 개설·운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모두 연결해야 하는 지화는 수화에 비해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어 이지민 교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척 힘든 일인데, 유림이는 항상 밝고 건강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나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한 청각장애 친구를 위해 수화를 배우려는 반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럽다”라며 “바쁘다는 이유로, 신청자 조기마감이라는 핑계로 특수교육 연수를 받지 못했는데, 2학기에는 특수교육 연수에 꼭 참가해 반 아이들이 손끝으로 피어낸 하늘빛 우정의 대열에 합류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
2학기부터는 1학년4반만 따로 수화초급반이 운영될 예정이다. |
“유림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
특수교사를 꿈꾸는 조효정 학생은 청각장애 친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간다고 전했다. |
온양한올고 1학년4반 조효정 학생은 청각장애 학생 유림양과 처음 소통할 당시 종이와 볼펜을 이용했다고 한다. 처음 만났던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유림양이 종이와 볼펜을 항상 가지고 다녀서 편지를 쓰듯 대화했다는 설명이다.
“지화는 유림이에게서 처음 배우게 됐어요. 간단한 수화도 함께 배웠지요. 고등학생이 돼서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언제나 밝은 유림이 주위에는 친구가 항상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다른 친구들도 지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지요.”
효정양에 따르면 1학년4반 학생 중 유림양과 친한 여덟명의 학생이 유림이에게서 처음 지화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반 전체 학생이 유림양과의 소통을 위해 여덟명의 친구들에게서 지화를 배웠다. 이후 방과후 수업으로 수화반이 운영되고 수화반에 등록한 두명의 학생이 반 친구들에게 간단한 수화를 알려줬다. 해서 이제는 1학년4반 전체학생이 지화로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지화를 처음 배울 때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하나하나 또박또박 손짓 하려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렸지요. 특히 유림이는 지화를 빨리빨리 하는데, 너무 빨라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반 친구들 모두가 지화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가 돼서 유림이와 소통하는데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지화는 말로 하는 것 보다 느리기는 하지만 생각 없이 내뱉는 말실수가 없으니 친구끼리 상처 받을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더욱 좋은 것 같아요.”
한편, 효정 학생은 유림양과의 관계가 자신의 꿈에도 무척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아산시 장애인복지관과 환희애육원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효정 학생의 꿈은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특수교사라고 한다.
조효정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지체장애 학생과 1년 내내 짝을 한 적이 있었어요. 6학년이 돼서는 선생님의 권유로 또 다른 지체장애학생을 챙겨줘야만 했는데, 그때에는 그 친구들을 챙겨줘야 하는 것이 너무나 싫고 창피했어요”라며 “그런데 중학생이 돼서 생각해보니까 지체장애인 친구들을 잘 챙겨주지 않고 무시한 제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장애학생들을 무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특수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지요”라고 말했다.
이어 효정 학생은 “유림이와 친하게 지내면서 지화와 수화도 배울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장애학생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유림이와 더욱 친하게 지내면서 더욱 많은 부분을 챙겨 주려구요. 유림아 사랑해. 앞으로도 잘 부탁해”라고 전했다.
|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염유림 학생은 “농아친구들 가운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도 있는데, 반 친구 모두가 저를 위해서 어려운 지화를 배우고, 무엇이든 저에게 맞춰주니까 너무나 고마워요. ‘사랑해’ 모범생 친구들아”라고 말했다.
|
“친구들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농아친구들 가운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도 있는데, 반 친구 모두가 저를 위해서 어려운 지화를 배우고, 무엇이든 저에게 맞춰주니까 너무나 고마워요. ‘사랑해’ 모범생 친구들아.”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염유림 학생은 반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지화로 대화하다보면 답답할텐데, 오히려 ‘빨리 못 알아들어서 미안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 모두가 ‘모범생’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가끔 저를 위한다고 하는 일이 무의미 할 때도 있어요. 어떨 때에는 선생님께서 수업이 끝난 후 저에게만 따로 보충설명을 해주시려고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는데, 때로는 교실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들으라고 배려해 주시는데, 실은 뭐라고 하시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거든요(웃음).”
유림양은 청각장애인의 언어는 일반인의 언어와 전혀 다르다고 전했다. 입술모양을 보고 알아들을 수 있는 구화를 배우지 않는 이상 일반인의 언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말의 효과를 더하기 위한 제스처를 이해하는 것 역시 어렵다고 설명했다.
“친구와 단둘이 이야기 할 때에는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데, 친구들 여럿이서 수다 떨 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친구들이 저와 이야기 할 때 답답함을 느꼈을 텐데, 때로는 저도 친구들의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껴야 서로 공평하지요(웃음).”
한편, 밤하늘의 별빛 보는 것을 좋아하는 염유림 학생은 천문학자를 꿈꾸고 있었다. 공부를 썩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농아들 가운데 특별하게 잘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수천만년, 수억년 떨어진 별빛을 연구하는 천문학자가 돼 보이겠다고 밝혔다.
|
염유림 학생이 수화통역사의 참관으로 진행된 인터뷰 내내 밝은 웃음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