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흥타령관이 건립 및 유물전시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난 4월3일 개관했다.
천안흥타령관은 ‘춤주제관’과 ‘전통주관’, ‘명주관’, ‘주기명품관’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제2전시실 ‘전통주관’은 누룩고리, 시루, 소줏고리 등 전통주 관련 유물 및 자료 등을 전시해 전통주의 역사와 제조과정 등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제3전시실은 명주관으로 서울 문배주, 충남 두견주, 경주법주 등 전국의 전통명주와 천안을 대표하는 막걸리, 연미주, 포도주 등을 전시하여 전통주의 향기와 특징 등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전시했다.
제4전시실 주기명품관에서는 청동기부터 근현대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술병, 잔, 접시 등 술 도구 명품 등을 전시해 전통주의 의미를 재고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전통주의 태동과 발전
우리 민족은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술을 빚어 마셨다.
삼국 형성기에는 고조선, 원삼국시대의 전래 곡주를 바탕으로 누룩과 맥아로 술을 빚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후기에는 백제의 주조 기술이 중국과 대등할 정도로 발달을 보였으며 고구려의 양조 기술을 이어받은 낙랑주법이 신라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삼국시대 후기에 발아된 주류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비교적 다양한 곡주들이 등장하였으며 청주가 음용되었다. 특히 예주 문화가 정착되어 폐백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려시대는 삼국시대에 비해 훨씬 그 종류가 다양해지고 제조 방법에서도 한층 발달했다. 궁중에서는 양조 전담부서인 양온서를 두고 어주와 국가 의식용 술을 빚었고, 일반에서는 사원에서 제조한 누룩과 술을 파는 등 상품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은 소주의 등장이다.
소주의 보급은 각종 가향주, 약주의 대중화로 이어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혼양주의 제조법을 낳았다.
전통주의 전성기
조선시대의 전통주는 우리 술이 가양주라는 상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의 주품들은 가양주로 계승발전하여 꽃을 피웠고, 양조 방법의 기술과 재료면에서 점차 고급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고려 후기에 정착된 증류주는 급속한 신장을 보였고 양조 원료는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멥쌀 위주에서 찹쌀로 바뀌고, 단양주법에서 중양주법으로 변화 했으며 양조 기법에서는 발효에 따른 미생
물, 곧 효모를 증식시켜 둔 술밑에 석임을 넣고·부본·주모를 이용하는 중양법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다.
또 조선 후기에는 각 지방의 토속주와 반가에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곡주류가 가양주로서 주품을 다투어, 전통주의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전통주의 쇠퇴
개회기에 들어 대량화와 경제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가양주로서의 전통주는 부녀자들이나 하는 천업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전통주 경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매주, 고량주, 주정 등 수입양주에 밀려 가내수공업 형태의 국내 양조업은 압박을 받기 시작했으며 특히 1909년 2월 일본이 자가 양조를 금지하는 '주세법'을 발표하면서 전통주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48년 광복 이후에도 '주세법'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한국전쟁 후에 식량 부족을 이유로 '식량관리법'을 제정 하고부터 밀주 단속이 표면화되었는데 이로 인해 650여 종에 이르던 전통주는 1982년에 30여 종으로 줄어들었으며, 술 빚는 법의 전통성을 잃은 채 오늘날까지 일본식 술빚기와 국적을 알 수 없는 획일적인 방식의 개량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통주의 종류
‘탁주류’는 전통적으로 막걸리를 비롯, 이화주, 혼돈주, 합주 등과 같이 술 빛깔이 뿌옇거나 흐린 상태의 술을 탁주류로 분류하는데, 비교적 알코올 도수가 낮고 저장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긴 하나, 여느 술에 비해 감칠맛과 영양가가 높아 서민층에서 특히 즐겨마셨다.
탁주는 술일 빚는 재료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지며, 몇 번에 걸쳐 빚은 술이든 '마구' 또는 '함부로' 거르다 보면 술 빚는 횟수에 따라 빛깔이 탁해지므로 '탁주'라고 하여 그 중 막걸리가 대표적이다.
‘가향주’는 생활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꽃잎이나 과실, 껍질 등 향기를 간직한 자연재료를 술에 넣어 그 향기를 즐기고자 할 때 빚는 술이고, 약효와 독특한 향이 있는 생약재를 첨가해서 빚는 ‘약용약주’는 약재의 저장목적과 질병예방 및 치료를 위해 필요에 따라 빚는 술이다.
가향·약주류는 잘 익은 술에 이들 부재료를 넣어 숙성시키는 방법과 처음부터 함께 넣어 빚기로 하는데, 그 방법에 따라 향기나 약효가 달라진다.
‘청주류’는 탁주에 비해 술 빛깔이 맑고 깨끗하며, 비교적 알코올 도수도 높은 편이다. 청주는 술을 거르는 과정에서 탁주와 구별되는 술로서, 지료에 따라 빚는 방법에 따라 술 빚는 횟수에 따라, 향기에 따라, 빚는 때에 따라 각각 고유한 이름을 지니게 된다.
잘 빚은 청주는 독특한 방향과 일곱 가지 맛을 간직하고 있으며 제사 등 통과의례를 비롯 각종 의식에 널리 쓰이는데, 청주야말로 우리 가양주와 전통주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발효주들은 비교적 알코올 도수가 낮아, 주변환경이나 온도에 의한 영향에 따라 재발효나 산패 등 변질되는 등 단점이 있다.
따라서 술을 장기간 보관할 목적으로 이를 증류하거나, 처음부터 소주를 얻을 목적으로 증류한다. ‘소주류’도 주재료와 부재료의 종류, 빚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하는데, 어떤 종류의 소주이든지 영양성분은 없어 발효주와는 크게 구별된다. 다만, 주재료나 부수적으로 첨가되는 재료에 따라 향기성분만 남게 된다.
천안의 전통주와 주기
충청도의 전통주는 지리적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남부지역과 산으로 둘러싸인 북부 지역의 지리 환경적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충청도의 전통주는 찹쌀을 주재료로 한 미주가 많고, 술빚는 법이 비교적 순박하고 소박하서도 감칠맛이 뛰어나다.
천안의 전통주는 삼남대로 중심지인 천안삼거리와 주막 등이 번성해 일찍부터 발전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온양온천의 약수로 만든 신정주가 일본에 수출되어 각광을 받았고 각 읍면에 적어도 한두 개의 양조장이 존재할 정도로 발전했다.
이후 역사의 추세에 따라 쇠퇴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까지 흑성산 줄기 지하 암반수와 천안 쌀을 주원료로 전분과 과당을 첨가해 향, 맛이 좋고 청량감이 우수한 천안 막걸리, 수 시간 물에 불린 생쌀에 끓는 물을 붓고 물에 누룩 개은 것을 넣어 술을 발효시키는 '백하주‘의 전통기법으로 만들어 상큼하고 부드러운 생약주인 연미주, 지역 특산물인 거봉포도를 주재료로 만든 와인을 증류해 만든 거봉증류주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천안은 고려 이전에는 '도솔'이라는 지명으로, 고려 태조 완건 930년 이후로는 '천안'이라는 지명으로 명명되어 왔다.
오룡쟁주의 지형을 가지고 있어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며 일찍부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또한 문물이 상호 교류하면서 독특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또한 문물이 상호 교류하면서 독특한 문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주기 또한 그렇다.
원삼국시대에는 가야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특한 ‘파수부잔’이 유명하고 삼국시대에는 중국제 주기들이 부장되어 국제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에도 청자, 백자 가마터 등이 출토되어 다양한 술 도구들을 만들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