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개봉돼 전국을 강타한 ‘친구’는 화려하고 절제된 액션장면 만큼이나 사나이들간의 의리를 진솔하게 되묻는 영화였다.
의리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아니 남자라고 해서 다 의리 있는 것은 아니니, 남자중에서도 일명 ‘사나이들만의’ 것으로 치부해야 옳은 말일 것이다.
사나이는 남자라는 의미 외에 영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누구나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 또한 인간 본성이라고 볼 때 의리를 내세우는 현상은 우리 주위 곳곳에서 발견된다.
천안시의회 3대가 개원한 지 만 4년이 되고 있다. 그동안 가만히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것은 시의회에서도 사나이들의 의리가 활발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의리가 극도로 불안하게 느껴진 것은 왜일까. 아마 의리라는 것이 자칫 ‘패거리’로 왜곡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 아닐는지.
시의원은 개개인의 이해타산에 앞서 공인의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한마디 말이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도 사람들의 관심과 비판이 쏟아지기도 한다. 시 현안에 대해 자주 이견이 생기고 그에 따라 대립적 구도에서 갈등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시의회는 최근 의회 민주주의를 팽개치면서까지 감정에 몰입한 의견을 고집하며 전형적인 패거리주의를 모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감정과 자기편 의리를 위해 공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하는 근본도 잊어버렸나 보다. 현안을 놓고 정확하게 진단하려는 자세보다는 내편, 니편 가리기가 먼저고, 숫자가 불리한 쪽은 무조건 억지쓰고 진행을 방해하고, 멱살잡이에 바쁘다. 그도 저도 안되면 한꺼번에 우르르 빠져 나가 의회를 비판하고 성토하는 성명서나 입장발표 등을 서슴지 않는다.
의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보여지는 의원들의 잘못된 보이콧 속에 의회가 멍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어쩌면 이들을 뽑아준 유권자, 곧 시민들에게 ‘왜 이런 의회를 만들었냐’고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 각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