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생동안 다닌 거리를 합해보면 얼마나 될까. 지구 한바퀴가 보통 3만8천㎞가 조금 안된다고 하니, 집에만 있는 사람들은 지구 한바퀴도 못돌았을 테다. 또 직업 때문에 매일 돌아다닌다거나 자주 장거리를 뛰는 사람들은 열바퀴를 넘어섰기도 하겠다.
그러나 최소한 지구 26바퀴를 돈 사람이 천안에서 살고 있다. 지난 96년 철도인생 34년을 마감하고 정년퇴임, 현재 풍세면 이장단협의회장으로 지역봉사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박계훈씨(65).
그가 철도근무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63년경으로 70년도에 들어서 기관사가 됐다. 93년 기관사를 그만두기까지 주로 운행하던 곳은 천안 기점에서 대전, 장항, 제천, 서울이었다.
기관사로 반평생을 보내며 지냈던 사연이야 오죽 많을까만은 그가 제일로 내세우는 것은 93년 ‘1백만㎞운행’을 탈없이 달성한 것이다. 그의 집 거실에는 당시 청와대에 초청받아간 18명의 동료 기관사들과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기념사진이 커다랗게 붙박혀 있다.
그가 기관사 근무로서만 다닌 1백만㎞의 거리는 지구 26.5바퀴에 해당한다. 이렇게 볼 때 그 외의 거리를 합하면 30바퀴도 더 돌았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 얼마나 돌아다녔나는 그리 중요한 척도가 되지는 않겠지만 박계훈씨에게는 그 자체가 인생이었다.
그와 철도가 하나가 된 지 34년. 그래서인지 우연찮게도 그의 고향 풍세면 가송2구 마을에는 그의 정년퇴임과 더불어 고속철도가 생겼다. 요즘은 고속기차의 시운전 기간. 기차가 고속레일을 따라 이 마을을 쏜살같이 지나갈때면 그의 눈길도 기차에 가있다.
“저것은 소음은 있지만 무진동 공법으로 설계돼 있어 마을에 큰 영향은 아직 없습니다. 예전과는 비교가 안돼요. 기술이 워낙 좋아졌어요.” 그의 기차예찬은 1남4녀를 튼실하게 키워온 자랑 만큼이나 남달랐다.
얼마전 철도기관사 파업과 관련, “이틀 정도만 파업이 연장됐어도 징발(?)될 뻔했다”며 정부 민영화 방침과 기관사의 애환이 충돌한 것을 가슴아파 했다.
자녀들이 장성해 다 떠난 집 건넌방은 그의 사무실로 꾸며져 있다.
“이장협의회장을 맡다 보니 회의장소도 필요하고 일할 공간도 필요해서요.”
작은 방에는 침대 하나, 책상에 컴퓨터 한 대만이 달랑 놓여 있다.
이제 그가 가야 할 길은 지역봉사. 그가 지금껏 달려온 거리보다, 지역을 사랑하고 봉사하려는 그 길이 더 멀고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