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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아티스트라 불러다오

등록일 2002년03월2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그의 직업은 공 아티스트와 축구코치. 한가지 더 보탤 것이 있다면 월드컵 축구 전도사. 공 아티스트라는 말은 우희용(38‘천안시 원성동)씨로 인해 처음 만들어진 말이다. 우씨는 축구헤딩만으로 5시간6분30초를 기록, 공인 세계 신기록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뿐만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라톤 42.195km를 축구묘기로 완주했고 축구의 황제인 펠레가 그의 축구실력을 인정해 자신의 생일에도 초대했을 정도다. 그가 공 아티스트가 된 것은 스무살 때 미국으로 가서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국에서 알아주지 않던 공 아티스트는 세계무대에서 먼저 알아봤고 ‘미스터 우’하면 공의 마술사이자, 아티스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 그가 천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한국에서 월드컵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의 모든 묘기와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월드컵 주요 경기장과 가까운 천안에 인연을 맺게 된 것. “단순한 묘기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아야 축구감각을 키워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축구는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을 묘기로 치부해 버리고 무조건 골 결정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안타깝다”고 우씨는 말한다. 우씨는 또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 공 차는 감각을 익히고 이를 통해 이번 월드컵뿐 아니라 앞으로 있을 많은 축구대회에 기초가 되는 홍보작업을 하고 있다”며 “공 아티스트뿐 아니라 코치를 하는 것도 축구의 기본과 정신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우씨는 축구사랑을 이렇게 말한다. “축구는 모든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민족을, 세계를… ”사랑과 평화를 만들어가는 스포츠 축구에 빠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남시에서 태어나 놀 수 있는 기구라곤 축구밖에 없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서울에 전학와서도 연필만 잡아도, 밥을 먹어도 축구만 눈에 어른거렸다. 다섯 남매 중 외동아들이자, 장남인 그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를 시작, 부상을 입고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어, 미국으로 향했을 때도 그에게 가진 무기는 축구밖에 없었다. 헤딩부분의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때 고도의 집중력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우씨는 해냈다. 하지만 지금 우씨는 어느 때보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월드컵 홍보에 나섰다. 민족이 하나되고 민족과 민족이 덩실덩실 춤을 춰 축구의 최강국으로 골인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주아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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