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식물원이라 해서 구경해본 곳은 서울랜드와 제주도를 꼽는다. 아름드리 커다란 식물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식물원을 다 구경하고 나온 후에는 가슴속이 시원하고 뭔가 새로운 경험으로 충만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천안지역에도 꽤 근사한 식물원이 자리잡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성남면 대정리 유원농원이 그곳. 농원의 주인은 94년까지 11년간 전 산림조합장을 역임한 류재옥씨(73). 류씨의 농원엔 목본류 1천4백70종, 관엽과 일반식물 2천7백종, 야생화 5백60종이 그의 손에서 자라고 있다.
그가 가꾸는 식물의 특징은 하나같이 ‘무늬식물’. 그것은 보통 식물에서 변종돼, 잎에 무늬가 새겨 있는 특이한 식물이다. “무늬 양지꽃은 아마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 무늬식물은 대부분 희귀한데 이곳에 있는 것 중 3백60여종이 무늬야.” 류씨가 변종을 좋아하는 이유는 ‘희귀’해서다.
일부러 돌연변이종을 만들지는 않지만 이처럼 희귀종을 좋아하다 보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자주 나가 무늬식물을 구해 오길 수십년. 그의 식물원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구색을 갖추고 있다.
이곳 식물원에는 작년 여름에 맺은 노란 유자열매가 아직도 매달려 있는 유자나무가 있으며 활짝 만개한 큰꽃으와리, 바위떡풀의 일종인 노루귀, 조개나물, 애기매발톱꽃, 개버무리, 높은 곳만 좋아해 작은 바위틈에서 자라는 넉줄고사리, 뉴질랜드산 앨리카, 선인장과에 속하는 거미바위솔, 매발톱 바위솔, 수염고랭이, 백두산이나 한라산 등 고산에서만 자생하는 암매, 향기나는 제비꽃, 꽃이 영락없는 소주잔을 닮은 은배초 등 셀 수 없이 많다.
무늬가 들어있는 애기갈대나, 지난해 전국체전때 대통령 자리앞을 장식했던 것이 무늬억새라고 자랑하는 류씨는 “무늬종은 나한테 걸리면 행복이 돼” 하며 고희를 넘어선 나이에도 동심어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류씨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원츄리꽃으로, 잎마다 줄무늬가 수놓아져 수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이제 55년째가 된 유원농원. 1남4녀의 가족들부터 전국에 수많은 그의 제자와 식물 마니아들에겐 왠만큼 유명세를 치루고 있지만 아직 천안사람들에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화원’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전국체전에도 전시장을 그의 꽃들이 수놓았으며, 이번 안면도 꽃박람회에도 천안관에 분재 1백20점, 야생화 4백점이 24일간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꽃들에게 물을 주는 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류씨는 잡풀을 뽑아주고 잎을 갉아먹는 달팽이를 찾으러 밤 11시쯤에 후레쉬를 들고 일터로 향한다.
1시간 이상을 얘기하면서도 눈과 손은 시종 꽃들 사이로 바쁘게 움직였다. 물을 주기 시작하는 류씨를 뒤로 하고 나오며 ‘오묘한 자연의 섭리’에 새삼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