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던 자리도 깨끗이 하고 조용히 물러나겠다.”
이근영 천안시장은 5일(화) 오후 4시에 기자회견을 요청, 이같이 폭탄 선언함으로써 더이상 구설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측근인 국장들조차 기자회견 전까지 모를 정도로 자신의 향후 거취를 알리지 않았던 이 시장은 그러나 한달 전쯤부터 심대평 도지사와 정일영 천안갑 지구당위원장에게 이같은 뜻을 전했으며 “결코 자민련 등 어떤 갈등도 없이 내 스스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결정은 오래 전에 굳어 있었다. 두번의 관선시장을 거친 나에게 또다시 1기 민선시장 당선이라는 것은 너무 과분했었다”고 말하는 이 시장은 이후 2기 민선때는 시청사 이전문제, 전국체전, 상수도 2단계 공사, 구획정리 등 산적한 현안들로 떠나지 못했다고.
이 시장은 가장 아쉬운 점으로 농촌시책을 꼽았다. 농촌지역에 대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농촌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여기에 소비패턴이 바뀌며 전국적인 공동화 현상으로 발생한 재래시장 문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고 피력했다.
그동안 시장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 해야 할 일들을 부끄럼 없이 소신껏 최선을 다했다는 이 시장. 이제 그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소시민의 본분에 충실하며 주유천하(周遊天下)할 것을 강조한다.
깨끗이 그만 두겠다는 사람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되겠냐며 웃음도 보인다.
채 2백자도 안되는 간단한 기자회견문에서도 이 시장은 “공무원이 잘못하면 꾸짖어도 잘 할 땐 아낌없이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그들에게도 사기진작이 필요하지 않는가. 항상 관용으로 아껴주시던 천안시청 공무원에게 감사드린다”는 인사말을 잊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마지막 시장임기는 6월30일까지로, 세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그동안 임기에 충실하겠다는 이 시장에 대해 시민들은 섭섭함을 감춘 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근영 시장 불출마-대다수 시민들 ‘환영’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어느 시의원의 말처럼 이 시장의 사심(邪心)없는 용기에 대다수의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특히 다가오는 지방선거 출마시 당선에 유력한 후보중의 하나였음을 생각할 때 ‘불출마 선언’은 지역사회에 더욱 의미가 깊다.
성무용 갑지구당 위원장을 내세운 한나라당측은 “이룩해 놓은 업적이 많음에도 불구, 후세를 위해 용기를 보여준 이 시장의 결단을 환영한다”고 전하며 그동안 이 시장 대결구도의 전략을 수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이 속해 있었던 자민련은 찬성과 반대의 분위기로 나뉜다.
후학을 위한 용단에 찬성하는 당원들이 있는가하면 이 시장만이 차기 시장의 적임자라며 섭섭함을 내비치는 당원도 있다.
10여명의 시의원들은 최근 ‘이 시장 옹호입장’을 표출하려다 접기도 했다.
자민련은 내심 이 시장의 물러섬에서 발생하는 ‘지각변동’에 예의 주시하는 상황이다. 이는 현재 거론되는 정순평, 박상돈씨 외에도 시민이 원하는 인물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와 공무원들도 반기기는 마찬가지. “아쉽지만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고희(69)의 나이가 되도록 4번의 천안시장을 역임한 이 시장의 이같은 불출마는 전국에 알려지며 정치겨울에 모처럼 ‘햇살’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