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이나 알코올 문제처럼 인터넷 과다사용이 일상생활을 못하게 만든다는 ‘인터넷(게임) 중독’.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1일(화) 천안시민회관에서 열린 충청남도청소년종합상담실 주최의 제8회 심포지엄에서 “그러나 이런 행동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하루종일 바둑만 두거나 책만 읽는 사람들에게도 바둑중독이나 책중독이란 이름을 붙이고 치료해야 할 것”이라며 중독이란 표현의 부적절함을 들었다.
황 교수는 사이버 공간이 또다른 현실이 된 이 시대에 “자녀에게 하지 말 것을 명령하거나 모른 척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몰두한 아이가 더 의미있고 더 재미있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믿어주고 격려하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의 이같은 현실적 문제와 대안은 비단 10대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거리에서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초등학생들도 똑같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관내 1백여개의 초등학교와 그 앞에 늘어선 문방구들 앞에는 어김없이 미니 오락기가 3∼4대에서 많게는 10대까지 놓여있다. 그리고 그 기계들을 부숴져라 두드리는 아이들이 언제나 바글바글, 좀체 비수기를 모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17일(월) 신방동 신촌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영석(가명·5학년)군은 방과 후, 또래 아이들과 여느 때처럼 인근 문방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2월 중순이 넘어서며 바람은 칼끝처럼 매섭게 몰아쳐 귓볼과 볼, 코끝을 빨갛게 달구고 있었다.
미니 오락기는 총 6대지만 10여명의 아이들은 유독 두 대의 기계에 몰려든다. ‘더킹 97’과 ‘철권’은 이들 초등학생들에게 이른바 ‘인기 짱’으로 통하고 있었다. “야, 내가 해볼게, 비켜봐. 그 녀석은 내가 부숴줄게.” 영석이는 서너판이 지나며 상대선수에게 밀리고 있는 4학년 후배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이들의 놀이세계에는 어느덧 질서가 잡혀 있는 것처럼, 한 아이가 하다 밀리면 옆에서 대신해 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전 더킹 10판과 철권 8판, 다 깨요. 얘네들 중에서는 제가 제일 잘 해요. 여기 있는 얘는 못깨고, 얘도 못깨고, 재는 더킹만 깨고….” 방심하다 져버린 영석이는 자리를 도로 내주며 계면쩍은 듯 자기의 오락실력을 자랑했다. 서로간의 실력이 이미 순위를 가름해 등수로 먹여진 아이들의 오락세계는 이미 프로의 경지에 다름 아닌가.
연신 작동기를 두드리는 아이들의 고사리 손은 그 빠르기가 번개 같다. “저 백원만 주세요.” 갑자기 영석이가 손을 내밀자 또다른 아이가 “저도 백원만 주세요” 하며 달라붙었다. 자존심도 있을 나이지만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더니 오락에 빠진 아이들에겐 손벌리는 일이 전혀 창피스런 게 아닌가 보았다. 잠시 후 오락기 앞이 한산해지더니 어느덧 아이들은 또다시 몰려들었다.
이곳 신촌초등학교 앞의 문구점 풍경은 다른 곳의 ‘복사판’. 학교가 끝난 초등학교 앞 문구점들은 항상 아이들이 만원을 이루며 이슥한 늦오후까지도 떠날 줄 모른다.
“아이들은 보통 백원만 넣어도 한참을 놀아요. 전기값 빼기도 빠듯하죠. 돈벌려고 하나요.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즐기니 갖다 놓죠. …돈벌이는 안돼요.” 문방구점 주인은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한차례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올 겨울철도 미니오락기에 중독(?)된 아이들의 문방구행은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추운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쭈그리고 앉자 오락기를 두드리는 아이들의 즐거움 뒤에는 이런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 고민많은 부모의 한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