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홍식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예전에 읽었던 ‘수정돛배(저자 바스콘셀로스)’를 책장 귀퉁이에서 발견했다.
척추가 분리되어 몸이 불편한 소년 에두. 그의 아름답고 깨끗한 사고와 예민한 감수성, 그리고 요양생활 속에서 키워가는 상상의 세계가 바스콘셀로스의 감미로운 필치에 의해 적잖이 감동을 전해주었던 책이었다.
에두는 왜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만 행복해 했을까. 책의 부제처럼 ‘고독속의 독백’으로 짧은 생을 살아야 했을까. 에두가 다른 이들과의 차이라고 한다면 다만 한가지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뿐인데….
갑자기 가을과 장애에 대한 사색에 빠져든 황망함을 벗어나려던 차, 서울에서 내려와 목천면 서흥리 문화마을에 정착한 심홍식(56) 죽전원 전원장을 찾아나섰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96년부터 4년간 원장으로 재직하며 막 걸음마를 띤 죽전원을 튼실한 반석위에 올려놓는 선봉장 역할을 훌륭히 해냈던 원장으로 기억했다. 죽전원 임기를 끝낸 후에도 서울 바롬새롬의 원장으로, 또 발달장애자를 위한 라디오 상담자로도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그.
그는 요즘 전원생활의 오롯한 기대를 안고 문화마을에 마련한 새집을 단장하다가 반갑게 반겼다. “전 장애자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차나 한잔 나누지요”하는 겸손 뒤에는 30여년의 장애 노하우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직 현실이라는 벽은 장애자를 두 번 죽이는 결과를 양산해 내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장애를 가진 자녀를 대부분 보듬어 키웁니다. 자녀 입장에서 보면 장애자임을 인식할 때 한번 죽고, 부모가 죽으면 시설에 맡겨지며 또한번 죽습니다. 사회복지가 아직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것입니다.”
심 전원장은 부모를 잘 만나 조기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일부 장애아들은 그나마 행복한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속에 하나님의 공평이 있습니다. 장애아의 60%는 그 부모가 경제적 사정이 양호하다는 것입니다. 이중 깨어있는 일부 부모들은 자녀의 독립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재활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죠.”
심 전원장이 교육학을 전공, 일반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우리나라에 외국의 장애학교 등을 도입,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에 헌신 공헌한 이방자 여사와 인연이 돼 특수학교 교사가 된 것은 73년경.
당시 단칸 판자집에 사는 봉천동 수재민의 불우한 환경에 뛰어들어 그곳에 고등국민학교를 운영, 불우청소년들의 교육에 앞장서다 이 여사에 ‘우연히 찍힌 것’이 그를 20여년간 특수학교 교사에 있게 했다.
특수교육을 받은 장애인들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과연 보통의 삶에 얼마나 접근했을까 하는 질문에 그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란 말을 내뱉는다. 그의 제자중엔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시도하다 죽음을 자초한 이들이 적잖다고 회고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얘기지만 제겐 상당한 수준의 교육에 오른 제자들이 있었죠.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웹 디자이너 수준의 컴퓨터 중증 뇌성마비 전문가도 있었고 액세서리 사장도 있었지만 사회의 냉대까지는 극복하지 못했는지 결국 자살로 불행한 삶을 마감했어요.”
약육강식의 세계로 일컫기도 하듯이, 일반 사회는 비장애인들에게도 비정한 곳. 장애인에게는 더욱 약자로서만의 편견이 도사리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이 담겨있었다.
“장애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장애자는 인격이하의 ‘어떤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장애 자체는 그 인간의 한 특성일 뿐이에요. 비장애인인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이 장애인에 대한 재활교육과 시설들이에요.”
돌아오는 길에 소년 에두의 생각에 다시 미쳤다. 혼자 사는 세상, 혼자만의 독백속에 상상의 나래를 핀 에두의 모습에서 이같은 장애인을 현실세계에서 껴앉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다시금 복잡한 심정에 젖었다. 심 전원장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맴 돈다. ‘장애는 그 인간의 한 특성일 뿐’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