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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탈을 묵과할 수 없다”

“일제 침탈을 묵과할 수 없다”

등록일 2006년07월0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강진원 의병장 순의비.(현재 전남 순천시 향림사 내에 위치하고 있다) 전남 동부지역 무장항쟁, 비밀 지키려 옥중자결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1908년 “일제의 침탈을 묵과할 수 없다”며 전남 순천에서 의병봉기하고, 일제 침탈기관과 일본군경을 대상으로 폭넓게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성산 강진원 의병장을 2006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전시기간 : 2006.7.1∼7.31 ㅇ전시장소 : 근대민족운동관 내 ㅇ전시내용 : 강진원 의병장이 의병을 봉기해 활동한 지역인 조계산 등 다수의 활동지역 사진 성산 강진원 의병장은 1881년 전남 승주군 서면 당천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고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 되자 1908년 우국지사 김명거·김화삼·권덕윤·김병학·김양화 등과 함께 호남의 동부지역인 순천 조계산을 근거지로 봉기했다. 1908년 곡성 조지촌 전투를 시작으로 약 1년여 동안 항일 무장전투를 전개했고 순천지역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을 무대로 폭넓게 활동했다. 또한 화기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순천지역 조규하(1877∼1908) 의병장과 연합투쟁을 모색하고, 나주·곡성의 의병부대를 합류시키는 등 효과적인 대일항전을 전개했다.그러나 강진원 의병장이 이끄는 의병부대는 1909년6월 순천시 서면에서 기습을 당하면서 해산하고 선생은 경남 통영의 연내도로 피신한 후 순천으로 돌아와 10여 년간 오성산 동굴에서 은신하면서 서당을 개설해 후학양성에 진력했다. 하지만 선생은 일제의 추적에 의해 1921년 7월16일 피체되고, 19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옥중에서 자결 했다고 전한다. 이에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강진원 선생 공적내용 요약 ◎- 1908 전남 순천에서 의병봉기- 1909 호남일대에서 항일 의병투쟁 - 1921 자결 순국 - 1977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정리/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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