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허덕이는 용사들도 많아
16살의 나이로 6·25에 참전한 주모씨(78 ·천안시 성남면)는 아직도 그 당시의상처가 남아있다.
어린 나이에 일제치하를 거치긴 했지만 전쟁이란 것이 뭔지도 모르고 자라다가 6·25를 겪게 됐다. 어린 나이에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자원입대한 그는 1950년 대전 전투에 참여했다가 폭격 속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왼쪽 허벅지에 파편을 맞아 겨우 목숨을 건졌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 여러 차례 전쟁에 참여했지만, 지금 남은 것은 그날의 상처와 보훈처에서 나눠준 참전용사증밖에 없다.
이렇게 대전·충남에 6·25에 참전했던 사람들 중 보훈처가 파악하는 인원은 3만5328명이다. 하지만 많은 참전용사들이 제 이름 한 번 역사 속에 남겨보지 못하고 생활고와 그날의 상처를 안은 채 운명을 달리하고 있다.
대전보훈처에는 대전·충남에 6·25참전자 중 65세 이상에게는 개인당 매달 6만원씩이 지급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예산만도 54억4300만원이고 예전에는 참전용사라 불렀던 것을 최근에는 ‘참전유공자’로 명칭을 달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보훈처의 혜택도 불구하고 천안, 아산시에 거주하는 6·25참전자들은 제대로 된 혜택은 커녕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특히 천안, 아산의 면단위, 소위 변두리 지역 용사들은 도심지역에 비해 홀대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전을 했더라도 증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생활고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용사들도 많다.
참전용사 그게 뭔대?
채모씨(78·아산시 신창면)는 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차출돼 전쟁에 참여했다. 폭격으로 인해 청력을 잃었고, 파편이 동자로 튀어 왼쪽 눈도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그가 6?25에 참전했다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학도병으로 끌려간 터라 제대로 된 기록하나 남아있질 않다. 그는 참전유공자증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토로한다. 채씨뿐 아니라 같이 끌려갔던 동네 친구들도 마찬가지. 다만 재향군인회를 통해 당시 참전했던 동료들의 장례소식을 듣거나,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밭일 하는 게 고작이다.
채씨는 “그때는 나라고 뭐고 나 살고 보자는 것밖에 없었는데, 이제 와서 참전용사가 무슨 필요인가 다만, 죽을 때 묻힐 묘지하나 있었으면 한다”고.
동네 친구 이순필씨도 마찬가지 “아직 통일도 안 이뤄진 터에 뭐가 좋다고 참전유공자인가, 그래도 생활고에 시달릴 때는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채씨나 이순필씨는 농사일로 생활고는 조금 벗어났지만 그렇지 못한 참전용사들도 상당수다.
용화동에서 폐지를 모으고 있는 장 모(78·용화동)씨는 참전 후유증으로 정신병까지 얻었다.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사는 장씨는 겨우 먹고 살기 위해 고물을 주워다 파는 것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신이 온전치 못해 이곳저곳에서 찬밥신세다. 장씨가 폐휴지 모으는 것을 돕고 있는 이 마을 주민들은 “장씨가 가끔 헛소리하면서 동료 이름을 부르고 폭탄이다 하며 숨기도 하는 것을 보고 6·25 당시 국군인 것을 알았다”고. 주민들은 장씨를 위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었지만 주거지가 아산시로 되어있지 않아 거절당했다.
요즘에는 치매마저 심해 제대로 끼니도 잇지 못하고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어 용화동 주민들 일부가 장씨를 돌봐주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같은 6·25참전인들의 실태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미흡할 뿐이다.
참전용사에 대한 관리가 주로 보훈처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자치단체의 대처는 미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녀가 있는 참전용사는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기초생활수급자에도 등재가 안 되고 있고, 의료시설 무료 이용도 극히 드물고 홍보도 미약해 이중 삼중의 아픔을 겪고 있다.
아산시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참전용사라고 해서 특별한 지원을 지자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이 곤란한 지경에 있는 주민들은 법률에 의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남 재향군인회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몸바친 국민에 대한 예우가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그들이 다 죽고난 다음에야, 더 나은 예우가 생길 것 같다”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보훈가족들이 많은 만큼 보훈처만 이 일을 담당하지 말고 지자체와 연계해 좀더 나은 삶의 질 보장과 예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전국가보훈처 김홍철 기획계장은 “당시의 군번만 알아도 참전유공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솔직히 면단위 지역은 홍보가 제대로 안 돼 이같은 혜택을 못 누리고 있다”며 “참전유공자에게는 참전유공자증뿐 아니라 수당지급 및 호국영사 묘지에 안장할 수 있으며, 장재를 지원하고 고궁 등에 무료입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생활이 어려운 참전유공자들에게는 지자체와 연계해 생활보조를 하고 있지만 연령은 높아지고, 참전인들은 많아 보훈처가 일일이 쫓아다니며 신청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국가를 위해 젊음을 바쳐 열심히 싸워온 그들에게 6?25 전쟁의 상처만 안길 것이 아니라 그들로 인해 성장해 온 국가와 자치단체가 참전유공자들에게 이제는 예우를 갖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