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에나 시행될 기초단체장 선거가 벌써부터 이상 기류를 타며 불붙고 있다는 소문의 차원을 넘어 대충 어떤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게 될 지도 짐작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각종 문화예술 행사는 물론 개인의 개업식에 참여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례.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까지는 그런 대로 봐줄 만하다. 너도나도 우후죽순으로 인사말을 하며 시민에게 얼굴 도장찍기로 나선 인사들의 모습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브라질 동부에 위치한 꾸리찌바는 대전 정도의 시임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부정과 부패가 난무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되는 도시발전으로 저소득층과 부유층이 하나되는 시책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시장 자이네 레르네르는 70년대 관선 시장을 시작으로 민선 3대를 거쳐 꾸리찌바를 변화시켰다.
한 사람이 계속 시장을 할 수 없는 법령 때문에 4년 임기 후에는 다른 사람이 시장을 하더라도 레르네르의 정책은 일관되게 꾸리찌바시 전역에 미쳤다.
레르네르가 이룩한 과업 중에는 버스승강장에 대한 개선도 있다.
한 번 돈을 내고 여러 노선을 갈아 탈 수 있는 지하철의 장점을 이용해 버스를 지하철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다. 지하를 파지 않고도 정류장을 개선했고, 또 장애인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모든 차를 개조했으며, 폐차될 버스들은 취미나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재창조 됐다.
레르네르는 이 일을 위해 각종 행사에 참여해 얼굴을 보이기보다는 버스정류장에 하루 종일 앉아 버스를 오르내리는 시민의 불편함을 보고 이같은 발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 일찍 시청에 들렀다가 컨테이너 같은 건설현장 사무실에 앉아 도시를 어떻게 하면 편하게 바꿀까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해 지금은 세계적인 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산시의 인사들은 아직도 행사에 연연하며 자신의 과업을 선전하기 바쁘다.
실상 일은 공무원이나 시민의 아이디어로 된 것임에도 자신이 한 것인양 부른 배를 흉칙하게 내밀고 있다. 정치 선전이나 과장된 포장, 이런 것에 이미 시민들은 넌더리 나 있다.
아산시 버스정책을 보라. 승강장에 제대로 서길 하나, 제 시간에 오기를 하나, 친절하기를 하나.
주민이 잘된 시책을 만나는 것은 생활 현장이다. 결코 행사장이 아니다.
벌써부터 개업식, 심지어 아기 백일집에 찾아가 인사말을 하는 인사도 있다고 하니 아산시민은 어떤 지도자를 뽑을 수 있을까. 진정한 아산시의 발전을 기대하려면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마음가짐부터 달라져야 한다.
현장에 가보라.
프랑스의 파리는 개똥을 밟지 않는 거리, 미국에서는 뚱보 줄이기 운동, 어찌보면 우습지만 주민 실생활에 고통을 함께 나누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제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닌 소위 지도자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모든 인사들에게 그럴만한 준비가 됐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