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강제노역 현장.
옷 한겹으로 견딜 수 없는 추운 겨울, 노숙자들에게는 더욱 고통스런 계절이다.
일 할 수 있는 노숙자라고 해도 일이 없는 요즘에는 쪽방 신세마저 질 수 없어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형편이다.
또한 서울이나 수도권의 경우 노숙자 쉼터가 간간이 있어 일자리 제공 및 숙식을 해결해 주지만 지역 노숙자에게는 마땅히 쉴만한 쉼터가 전무하다.
그나마 노숙자들을 위해 마련됐던 구세군의 급식소와 배급처는 경영 유지가 어려워 문을 닫게 됐고 노숙자들은 더더욱 쉴 곳도 먹을 것도 없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노숙자들에게는 먹을 것과 잠자리만 해결돼도 커다란 선물이 된다.
노숙자들의 이런 처지를 미끼로 이용해 강제노역을 시키다 사망케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아산경찰서는 노숙자가 일하지 않는다며 폭력을 휘둘러 사망케 한 조모씨(50· 배방면 구령리)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모씨 등은 2002년 초부터 천안과 아산 등지에서 노숙자들을 불러모아 조씨가 운영하는 개사육장에서 무임금으로 강제로 일을 시켜왔다.
조모, 강모(35), 연모씨(47)는 천안, 아산 등의 역전 주변을 돌며 신원이 확실치 않고 일 할 수 있는 노숙자들을 찾아 다녔다.
이들은 이렇게 모집한 노숙자들에게 5백여마리의 개를 사육하게 하면서 임금을 주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한편, 군기반장을 두고 일하지 않는 노숙자들에게는 수시로 폭행을 일삼아 왔다.
더욱이 이들은 노숙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가로 1.5m, 세로 1.2m 높이 1m 남짓한 개장에 3일 동안 하루 우유 2~3개만 주고 감금하는 등 인간 이하의 학대를 해온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다른 노숙자 김씨(50)는 경찰 조사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 구타는 물론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왔다”고 진술했다.
사망한 노숙자와 김씨 외에도 5명의 노숙자가 이곳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한번은 잡혀 개장에 3일 동안 감금 돼 맞기도 했고 얼마전에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혀 우측대퇴부를 심하게 다쳤다”고 말했다.
이같이 폭력과 감금을 일삼아 오던 조모씨는 작년 12월30일 오후 10시께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40대 노숙자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해 경찰에 붙잡혔다.
아산경찰서 류상돈 경사는 “부검을 앞두고 있으며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지문조회를 하고 있다”며 “노숙자 대부분이 최근에 경제능력을 상실, 마땅히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이런 일까지 당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노숙자의 신원파악에 나서는 한편 나머지 6명의 노숙자와 조씨 등을 상대로 여죄가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노숙자 갈 곳 없는 그들
신원미상의 남성노숙자 죽음 외에도 얼마전에는 주택화재가 발생, 60대 노인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노숙자였던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마땅히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은 노후된 시골 건물이나 건축자재들을 얼기설기로 얹어 거처를 마련, 살다가 이름도 없이 사망하는 실정이다.
구현중(배방면 장재리)씨는 “그런 노숙자가 시골에도 많다”고 토로했다.
개발단계에 있는 이 일대에 주소만 있고 보상을 받기 위해 집을 헐지 않은 빈집에 노숙자들이 들어와 산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들은 주민들의 전기시설을 몰래 따다 쓰기도 하고 옷가지와 이불을 거두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모씨도 “몇 사람이 되지 않아 이웃주민들이 돌봐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살기 바쁜 터라 이들이 잘못 전기를 끌어다 쓰거나 난방을 위해 불을 때면 화재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아산경찰서도 매년 겨울이면 신원미상의 노숙자들이 한두명씩 발생하곤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노숙자들을 위한 시설이나 방지책은 마련되지 않은 실정.
천안역 부근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한 남자는 “아산이 고향이지만 고향에 갈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쉴 곳이라도 있으면 잡부 일이라도 하면서 버텨 볼 텐데 비빌 언덕도 없다”며 “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 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배방면에서 급식센터를 운영하는 이재오 구세군목사는 “노인 급식과 반찬 배달을 하고 있다. 노숙자들이 쉴 곳만 있다면 밥은 여기서 먹여주고 싶다. 노숙자들도 사회의 일원이 되어 다시 가정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산시청 이모 관계자는 “시민, 사회단체에서 수용 및 급식시설을 갖춰놓고 지원을 요청하면 행정이 지원하겠으나, 아직 그런 단체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노숙자라도 시민이지만 그들을 위해 별도로 건축을 하고 지원할 수는 없고 이들을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는 국가와 도차원의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쉴 곳과 약간의 음식인데 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지자체와 정부는 겨울잠 중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쉴 곳과 먹을 것으로 유혹하며 한명의 노숙자가 강제노역과 추위 속에 생명을 단축해 갈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