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겹게 사물놀이를 펼치는 무지개 사물놀이대(오른쪽부터 장구 임미경, 북-박명준, 북-오윤근 회장, 꽹과리-김재만, 징-김순산, 장구-이준경)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소리로 보는 세상
음봉면 산자락 우사 안에서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울려 퍼지자,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먼지가 풀풀 나며 말랐던 대지가 촉촉이 적셔 오기 시작했지만 그토록 비를 기다렸던 그들은 비를 보지 못했다. 다만 우사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저 신명이 나 징과 장구를 울려댈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이들은 이름 대신 시각장애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소리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본다. 그들의 이름은 무지개 사물놀이패(회장 오윤근·아산시시각장애인연합회 지회장).
8명의 시각장애인으로 작년 12월 구성돼 이제 6개월 남짓 넘어가고 있지만 이들의 실력은 수준급.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이면 무지개 사물놀이패 단원들은 김재만씨가 소를 키우던 우사가 있었던 자리에 모여 ‘음머’거리는 소울음 대신 소가죽으로 된 장구를 치며 ‘덩덩덕 쿵덕’ 가락을 울려댄다.
“능력을 개발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인데 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죠.”창립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김재만 시각장애인 아산지회 사무국장.
사물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은 벌써 몇 년전부터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협조해 주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 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장애인복지관과 연결돼 후원단체와 연결하던 중 한배가족의 김철우 강사가 사물놀이 가르치기에 나선 것.
“일반시민보다 배우는 것은 좀 느리지요. 그러나 열의와 정성으로 몇 백배 나을만한 수준이 됐습니다”라며 김철우 강사는 자랑이다.
무지개 사물놀이패는 단지 배우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5월 어버이날에는 경로위안잔치 때 공연을 하기도 했으며, 한배가족 콘서트 때도 천안역에서 공연을 펼쳐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런 작은 봉사보다 더 크게 기억 남는 일은 지난 5월30일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수덕사로 놀러가 사물놀이를 한 것. 나보다 어려운 이웃이 있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장구를 치는 이준경씨는 “한번 그런 일 하고 나니 자꾸 하고 싶더라구요.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살림이야 어렵지만 이런 기쁨으로 사는 거 아니겠어요”라며 벙싯 웃는다.
“아따 기자양반! 우리 바람이 뭔지 안 물어봐요”하며 김재만 사무국장은 참았던 바람을 꽹과리만한 소리로 읊어댔다. “우린 후원이 없어요. 후원이.... 직업 적응훈련도 필요하고, 재능 개발도 좋고 우리 도와줘야 될 것 많은데 우리하고 같이 더불어 살아갑시다”라며 한마디.
그들은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북을 두드린다. 사람들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이들의 바람.
오랜 가뭄에 시원스럽게 내리는 비처럼 도움의 손길도 내려주길 무지개 사물놀이패는 기대한다.
다시는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었던 무지개. 다시는 세상에 편견과 소극적 지원이 없을 것이라는 우리의 약속으로 다시 한 번 이들 가슴에 무지개가 뜨길 신명나는 가락속에서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