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거로 번 몇 푼의 수입으로 기초생활수습권자에서 제외된 권보현 할아버지.
손수레 하나로 연명하는 노인의 푸념
“그래도 난 운이 좋은 사람이여.”
권보현(가명·72·아산시 온천동) 할아버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의 삶은 대략 이러했다. 아들 둘을 낳아 한 명은 교통사고로 죽고 그 충격으로 부인은 화병이 났는데 이듬해 위암까지 얻어 운명을 달리했다. 또 다른 아들은 군대에 갔다가 정신병을 얻어 집을 나갔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운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건 “아직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아내가 병을 얻어 죽고, 아들이 정신병 때문에 시달려 있는 재산 다 날리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형편이다.
권보현 할아버지는 공터를 임대 받아 5평 정도의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제외돼 있다. 폐지나 빈병을 모아 번 돈을 저축했기 때문. 그동안 못먹고, 못 자면서까지 하루에 적게는 30원, 1백원씩 저금해온 것이 원인이 됐다.
“여기저기 사실 안 아픈데가 없어. 겨울이면 더 힘들어. 힘들어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런 날은 굶지. 이러다 죽으면 또 누가 날 묻어주겠어. 장례비용은 마련해 놓고 가야지”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래도 살만해. 온양역에 가보면 나보다 더 굶는 노인이 많아. 다들 자식이 있어서 기초생활대상자도 안된대. 굶어죽으란 얘기지. 세상이 이렇게 잘 굴러가는 동안 나도 그렇고 그 노인네들도 그렇고 이름없이 어디서 죽어가겠지”라며 할아버지는 헛웃음을 지었다.
휠체어는 달리고 싶다
“세살 때 소아마비가 됐어요.”라며 윤성희(여?25?아산시 용화동)씨는 어렸을 적 사진을 보여줬다.
아버지 품에서 더 이상 부러울 것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던 윤씨는 갑작스럽게 아프면서 지체장애 1급이 됐다. 부모님이 그녀에게 쏟아부은 돈만도 집 두채값은 됐을 것이라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아마비와 함께 척추에 물혹이 생겼고 최근에는 여러가지 합병증으로 바깥 외출도 못하는 실정.
“2004년 소망은요. 부모님 힘들지 않게 빨리 저 세상으로 갔으면 하는 거에요”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돈 벌고 싶어도 손이 떨려서 간단한 작업도 못하고 컴퓨터도 못 만져요. 뭘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저 때문에 부모님은 자꾸 늙어가시고 그러다 돌아가시면 전 어떻게 살아요”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녀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애도 낳는 소박한 꿈… 그것이 제가 꾸는 부자에요. 하지만 제가 보아온 삶은 텔레비전이 전부이고 학교교육도 못 받아봤어요”라며 “문화생활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는 기반만 있다면”하고작은 소망을 털어놨다.
자주 아프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부는 할 수 없지만 “상담원을 했으면 해요. 이렇게 사는게 고통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희망을 갖지 않을까요”라며 미소를 띄었다.
웃음꽃 진 한부모 가정
충남 여성긴급전화1366을 운영하는 서선하 팀장과 김희순 상담원이 상담실 내에 한부모 가정을 맡아 ‘등대교실’을 운영하게 된 것이 올초였다.
갖가지 홍보방법을 통해 한부모 가정(편모, 편부가정)을 모아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자신의 치부를 내보인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집이 안 돼 애를 먹었다.
한부모 가정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별도로 시간을 내 상담실에 온다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
“경제적 빈곤만 겪는 게 아니라 소속감이 없고 대화상대가 없어 정서적으로 결핍돼 인간적인 접근도 쉽지 않다”는 게 김 상담원의 설명.
그나마 캠프, 자원봉사활동, 야유회, 율동체조 등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움이 크다고.
한편으론 기초생활수급권자여도 돈을 벌고 있으면 수급대상에서 제외되는 현실을 보곤 한부모 가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에 빠진다고 김희순씨는 말한다.
특히 “가정내 폭력을 못 이겨 한부모가 된 사례가 많아 다시 결혼하려고 하지 않지만 다시 좋은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고 서 팀장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