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시간, 사람들의 코트깃은 겨울 시린 바람을 피해 목 위까지 올라와 있다. 날씨가 추울 때는 집안 아랫목이 최고. 그러나 겨울철, 아랫목을 박차고 거리로 나서는 이가 있다.
천안의 한 소시민은 요즘 서울 대검찰청을 드나들기 바쁘다. 아파트 경비업무를 보고 있는 이병익씨(67?천안시 쌍용동).
이씨는 지난 3일(수) 검찰청에 출두했다. 평생을 살아오며 남에게 해꼬지 한번 한 적 없는 그에게 검찰청은 생소한 곳. “내가 가고 싶어서 갔겠습니까. 나라가 이 꼴이라 부아가 나 찾아간 거죠.”
얼마전 그는 대검찰청에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이회창 전 총재를 고소했다. 대선자금 불법모금 비리라는 이유를 든 그는 “범죄의 싹을 도려내 올바른 민주사회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고소했다. 고소장에서 경제위기 책임과 퇴임 후 매달 지급되는 연금을 문제삼고 “그에게 지급되는 돈은 어려운 이웃이나 중소기업 살리는데 쓰여져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고소장을 접수하니까 검찰청 직원이 그러더군요. 진정서로 내는 건 어떠냐구.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진정서 갖고 되겠습니까.”
대검찰청에서 이첩받은 검찰청은 지난 3일(수) 이씨를 불러 조사했고 이틀 후인 5일에는 이씨가 자진해서 첨부자료를 들고 검찰청을 방문했다. “나도 조사받았으니 저쪽에서도 누군가 나오겠죠. 당사자가 나올 수 있다면 좋겠는데… 좀 무리겠죠.”
남들은 “별 미친…”하며 이해하려조차 안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이씨의 행각은 일관되게 정부의 잘못을 비판해왔다. 때론 통일의 전령을 자처, 휴전선을 넘으려다 붙잡히기도 했고 부패비리에 얼룩진 전직 대통령들과 정당 총수들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키도 했다. 그의 집안에 청와대를 비롯, 각 행정부처나 주요기관에서 보내온 회신우편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행각을 엿볼 수 있다.
두 건의 고소장으로 부족했던지 며칠 전, 이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고소했다. 합법적이지 않은 대북송금은 썩은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며 응당의 책임을 물은 것. 고소장 한쪽에는 ‘검찰과 경찰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이 잘 살 수 있다’는 글이 타이핑되지 않은 채로 적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연말연시 사람들로 북적대는 거리를 지나는 그의 모습 속에 이 나라가 ‘나의 작은 관심’부터 시작된다는 신념 속에 살아온 그의 철학과 실천이 문득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행동양식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