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한국말 서툴러도 이땅에서 살고 싶어요”

등록일 2003년12월06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저임금과 폭력·폭언에 시달리다 못해 이제는 내쫓기는 처지가 된 외국인 노동자들. 자코(29·파키스탄)씨는 아산시 신창면 S업체에서 3년간 일해오다 작년 11월 밀린 임금 180만원을 받지 못한 채 한국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1년간 지루한 법정싸움 끝에 겨우 법원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변호사선임, 교통비 등으로 이미 40만원을 썼고 체류기간 4년을 넘었기 때문에 불법체류외국인으로 단속 대상이 됐다.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업주는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이고 숨어사는 자코씨를 오히려 불법체류외국인으로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자코씨와 그의 친구들은 현재 아산시 모처에 모여 살며 체불임금 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라루씨(35·방글라데시)도 마찬가지. 경기도 안산 근처 공단에서 일하다 아산으로 온 그는 한국에 머문지 7년이 됐다. 한국말도 잘하고 기술도 좋아 사장도 그를 아꼈다. 그러나 느닷없는 부도로 한국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끝에 갖고 있던 돈마저 탕진했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마저 없는 상태다. “이제 한국말도 잘해요. 더 일하고 싶어요. 그런데 임금도 못 받고 나 억울해서 못 가요. 죽어도 못 가요”하며 자코씨는 울먹였다.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이재관 소장은 “등록한 외국인이 늘긴 했지만 아직도 임금체불과 산재 피해 때문에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숙련된 기술자를 잃은 소규모 사업주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일(수) 기자는 S면 한 집에 찾아갔다. 5평도 되지 않을만한 좁은 방에 7명의 중국 노동자들이 놀란 듯 기자를 쳐다봤다. 일단 여자인 점에 안심한 이들은 흑룡강성의 친인척들이며 최근에 심해진 단속을 피해 아산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이중 단 한명만이 최근에 산업체 인력요원으로 일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조모씨(남·29)는 H금속에서 7년째 근무하면서 4년째 불법체류하고 있다. 조씨는 “일주일전에 대전에서 왔다. 밖에 나가 있는데 단속반이 떴다고 해 친구 5명과 피신했다”며 “내년 6월까지 집중단속을 펼칠 것으로 보여 농촌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D전자부품회사에서 근무했던 추이룽(방글라데시)씨는 “대부분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코리언 드림’을 꿈꾸고 들어오기 때문에 2년이 지난 후에도 불법 체류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와 4년 동안에 2000만원을 고국으로 송금했는데 이 돈으로 고국에 있는 부모와 가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출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관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장은 “고용허가제 통과 이후 4년 이상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심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외국인에 대한 인권은 보장하지 않은 채 단속만을 시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푼도 없이 이 땅을 나갈 수 없다는 외국인노동자들은 강제출국정책이 시행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스리랑카인 다라카, 방글라데시인 리톤, 러시아인 안드레이,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인 브로흔 등. 이러한 자살 외에도 스트레스에 의한 필리핀인의 병사, 공장에서 죽은 태국인, 노숙하다가 죽은 미얀마인 등 적지 않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숨졌다. 보름여간에 계속 일어나는 이들 노동자들의 죽음은 모두가 “자기 나라에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인데 강제 출국 되기 때문에 좌절하고 두려움에 떨다가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인 조모씨는 친인척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서툰 한국말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12월3일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외국인노동자 관련 몇 가지 정책을 내놨다. 4년 이상 불법체류자에게 고용허가제를 통해 재입국의 기회를 적극 검토하는 정책은 인권단체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형평성에 대한 문제와 4년 이하 불법체류자 전락자에 대한 정책이 아직 마련되고 있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강제추방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단속의 눈길 피해 외국인 고용허가제 이후 아산시의 등록 외국인은 2002년말에 비해 36%인 7백57명이 증가했다. 아산시에 현재 등록된 외국인은 등록자 수가 46개국 2천8백22명으로 이중 중국 4백26명(15%), 일본 3백85명(14%), 필리핀 2백4명(7%), 대만 1백13명(4%)순이다. 그러나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중국, 일본, 대만 국적의 외국인은 23%가 감소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산업체 연수 등으로 아산에 머물러 왔지만 대부분 4년 이상을 넘고 있어 본국으로 떠나거나 등록을 미룬 채 아산에서 표류하고 있다. 등록한 외국인에게는 관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외국인에게는 겨울의 긴 밤도 안심할 수 없다. 충남지방경찰청은 지난달 실시한 불법체류외국인 합동단속에서 카자흐스탄인 1명을 비롯해 외국인 불법체류자 22명과 이들을 고용한 업주 7명을 단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국인 16명, 카자흐스탄 2명, 몰드바인 2명, 우즈베키스탄 1명, 베트남인 1명으로 중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대부분 아파트 공사장 등 건설현장에 불법 취업해 있었다. 단속된 불법체류 외국인은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강제 퇴거되며 불법체류 외국인인 것을 알고 고용한 업주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게 된다. 같은 기간 전국에서는 1천3백33명이 단속됐고, 이중 외국인 1천98명, 고용주 2백35명이 단속됐다. 또 오는 8일~19일까지 2차 합동단속과 내년 6월30일까지 매월 1회(10일간)씩 합동단속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이주노동자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재관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장은 현재의 정부정책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씨의 사례처럼 많은 외국인 체류자들이 2차단속 기간만 피하면 6월까지는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 내년 총선 전인 12월에는 최대한 잡아들이고 총선시기에는 단속이 허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강제추방 정책은 중단되고 자진출국자 모두에게 노동비자가 동일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3일(수) 정부가 4년 이상 자진출국자에 대해서만 고용허가 입국허용을 한다고 했지만 이를 모든 나라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고용허가 대상국가도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모든 외국인노동자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과대선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골자다. 또한 불법 체류 4년 이상자들에 대해 고용허가를 허용할 때 한국에서 사증발급 인정서를 발급해야 한다는 것. 이미 출국한 사람에 대해서는 자진출국 확인서만으로도 사증발급을 해주도록 하는 확실한 정부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차 강제추방 조치가 발표되자 한 외국인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갈 수도 없고, 일할 수도 없고, 불법체류자만 막 잡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5명의 잇단 외국인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또 내가 되면 어쩌냐” 하고. 오는 10일(수)은 세계인권의 날이다.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국제적으로 보장하는 날이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산업현장에서, 건설현장에서 서투른 한국어로 일해온 외국인 노동자들. 체불임금과 산업재해로 점철된 이들의 인권을 정부가 어떻게 보장할지 한번 더 희망을 걸어본다.
주아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