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이해남씨와 세원테크

등록일 2003년11월2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이해남 지회장 분향소 전경. 노조와 상관없던 평범한 사람 이해남(41)씨는 62년 대전에서 출생해 노조와는 상관없는 일반기업 관리직에 근무했고 자영업도 한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그의 아버지는 회고했다. 그러나 세원테크에서 일을 하면서 작업장에서는 구타와 욕설이 오갔고 이를 수수방관하는 사측을 보면서 노동자 현실을 보게 됐다. 2001년 10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당선됐다. 세원테크 구재보 사무장은 “처음부터 큰 욕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면서 “폭력과 욕설 없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보겠다는 희망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세원테크 노조결성 이후 사측과의 잦은 마찰이 계속 되면서 결성 당시 1백20여명이던 노조원이 현재는 70명이라고 밝혔다. 이후 이해남씨는 노조활동과 관련해 수배와 구속, 그리고 해고로 이어졌다. 이 지회장은 지난 2001년 12월12일 충남지역 노동단체들과 연대해 총파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듬해 2002년 1월20일 처음으로 구속됐다. 그리고 3월 3년 구형을 받은 후 보석으로 출소했다. 노조는 2002년 7월 사측이 단체 임단협을 준수하지 않는다며 세원테크 공장을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이 지회장은 수배를 받게 되고 지난해 12월 두번째로 구속됐다. 2003년 3월 구속된 상태에서 이 지회장은 다른 조합원 3명과 함께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4월11일에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를 받고 출소했다. 두번의 구속과 더불어 이 지회장은 2002년도 투쟁 도중 회사측의 출입통제를 항의하며 바리케이트 철거에 나섰던 이현중씨가 투병 도중 사망하자, 이 지회장은 대구로 내려와 고 이현중씨의 시신을 지켰다. 민주노총 충남지부에 따르면 “고 이현중씨 장례절차를 순조롭게 하기 위해 몸을 낮추기도 했으나 회사측이 유족과의 대화에 불성실하게 임해 유가족과 함께 시위에 다시 나섰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 지회장은 또다시 올 9월 업무방해·명예훼손·집시법 위반 등으로 수배를 받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두번의 구속과 수배로 이해남씨는 심적 부담감과 괴로움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자살을 결행했던 지난달 23일 이전에도 인터넷에 죽음을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그 의미심장한 글은 23일 세원테크 대구 공장에서 분신으로 이어졌다. 노무현대통령과 가족들, 노조원에게 남기는 6통의 편지만 남긴 채였다. 분신 후 경과가 좋을 때 이해남씨는 지인들에게 “살고 싶다”며 “살아서 노동자의 탄압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주아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