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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녀들의 토크 “조금씩 익어갈 수 있다면” 

<천안 도솔문화포럼>이 초대한… 방송 이만갑에 출연하는 강은정·유현주·한수애의 진솔한 토크와 신나는 공연

등록일 2024년05월2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제가 전국 방방곡곡 뛰어다녀서 1초라도 통일이 앞당겨진다면, 그래서 보고픈 어머니를 하루빨리 볼 수 있다면 전 그리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
 

탈북자 한수애씨의 애달픈 마음이 읽혀진다. 키 크고 이쁘고 몸매좋은 여성들만 나간다는 해외 돈벌이로 캄보디아를 가게 된 덕분에 한국사람을 알게 되고 ‘남남북녀’로 결혼해 꼬맹이가 있는 단란한 가정을 이룬 한씨.

성이 ‘한’씨라서 한이 많은 건 아니건만, 어머니는 아직 북한에 계신다. 행복해서 더욱 어머니가 그리운, 한씨의 마음을 누가 알까.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유치환 시인의 <깃발> 한구절이다. 한씨의 슬픔이 아우성친다. 간절히 통일(푸른 해원)을 바라는 그녀의 소망이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 된다. 주변에서 “그깟 통일, 이젠 될대로 되라지” 하는 말들이 가볍게 들릴 때마다 한조각씩 마음이 깨져나가는 듯하다. 
 

또다른 탈북자 강은정씨는 ‘태어나 보니 북한인데, 그것이 저의 죄냐’고 토로한다.

23살까지 북한에 속아 산 것도 서러운데, 탈북하면서 세 번이나 잡혔다. 현대판 노예다. 세 번이나 값싸게 팔렸다. 정말 못생긴 중국인과 살게 되어 한국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는 그녀.

누구는 여덟번을 잡히고 아홉번째서야 한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온몸은 망가졌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그녀의 말이 걸작이다. “난 백번을 잡혀도 결국 탈북에 성공할 수 있다면 행복한 거다” 하고. 

그래도 강씨는 한씨보다 행복하다. 그녀로 인해 부모형제 모두 다 탈북해 한국에 와서 같이 살게 된 것. 가족에게 자유를 줄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영주권도 못받고 살다 강제북송당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이 그녀처럼 행복을 찾게 되기까지 노고는 멈출 줄 모른다. 
 

그녀들의 ‘이런저런’ 북한이야기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슬픔만,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탈북민인 유현주씨는 무거운 주제를 재치있는 입담으로 공감영역을 높인다. ‘터프가이 북한남자들’ 이야기를 할 때다.

“우리동네에서 이쁜 애들만 죄다 뽑아 해외로 보내니, 내가 제일 이쁜 사람이 돼버렸지 뭡니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졌지요. 사귀는 오빠가 때리는데 내가 맞고만 있겠습니까. 이제 헤어지자 했지요. 그러니 벽돌로 내 이마를 까버리지 뭡니까. 지금도 상처가 있어요. 가르마를 반대로 타게 된 이유가 되었지요.” 

한수애씨가 이야기를 덧붙인다. “남편이 부산사람인데 밥 묵나, 자자, 말이 짧지 않습니까. 그래도 북한남자보다 친근하더란 말입니다.” 

북한의 남녀사귐은 ‘백번찍기’란다. 남한은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는데, 북한은 백번쯤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여성은 그런 문화에서 튕겨야 가볍지 않은 여성이 된다. 그걸 남한사람에게도 하니 몇 번 찍다가 포기하고 가버리더란 말이다. 
 

북한사람의 남한적응기에도 문제가 있다. 맨몸으로 남한에 왔으니 더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는데 그게 안된다는 거다. 왜?

북한에선 열심히 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현주씨가 말한다.

“북한에서는 눈치만 보며 살지, 애초 열심히 살지를 않습니다. 눈치가 있어야 잘 사는 겁니다.” 이들은 군대용어를 쓰며 우스개소리로 현실을 알린다. “대대장은 대대적으로 해먹고, 소대장은 소소하게, 분대장은 부분적으로 해먹습니다.” 
 

탈북해서 가장 큰 자격지심은 ‘말투’다. 탈출했기에 쥐죽은 듯 살아야 하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단답형으로 말하다가도 ‘어디서 왔냐?’라든가 ‘고향이 어디냐?’ 라고 물으면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외국에서도 살다가, 북한말과 조금은 비슷한 강원도 어디서 살다가, 그러다 묻는 사람이 강원도 사람이라면 다시 이리저리 돌리고 비비꼬는 말들.

그런데 한번은 택시에서 내리는데 기사가 “함경도 사람이구먼” 하더란다. ‘어디서 들켰지’ 고민도 잠시 “화장법이 북한사람이야” 했다. 아, 왜 함경도 사람이라냐고? 거기에 두만강이 있어 가장 많이 탈북한단다. 그래서 흔히 두만강을 ‘도망강’이라 불린다고. 
 

유씨는 탈북민이 겪는 보다 근본적인 자격지심은 ‘남한’ 자체란다. 

“북한에서 지방사람이 평양 가려면 비자가 있어야 할 정도지요. 그렇기에 평양사람이 지방으로 추방되면 차라리 전봇대에 머리박고 죽겠다고 합니다. 북한 내에서도 그런데, 남한에 올 때 제가 탄 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타임머신이었습니다. 말도 안되게 잘 사는 남한, 주늑들 수밖에요. 자존감도 잃어버릴 수밖에요.”

강은정씨가 덧붙인다. “게다가 한국전쟁도 우리 잘못, 연평도 폭격도 우리가... 한번은 대통령 만나는 날인데, 그날 김정은의 핵(소식)이 터졌죠. (공연)행사는 바로 취소됐구요. 이러니 주늑이 들지 않겠어요.” 
 

탈북자의 대부분이 함경도이듯 탈북민 셋 중 둘이 여성이다. 그런 여성들은 남한사회에서 빨리 적응하며 산다. 특히 ‘남성’을 사귀고 결혼해야 하는 그녀들이기에 남한남자를 접하며 ‘북한남자’와 비교하게 된다. 

남한도 그렇거니와, 북한남자의 가부장적 ‘명령조’는 심하다. 한수애씨는 “아버지는 항상 엄마에게 ‘야’라 부릅니다. 그래서 엄마이름이 강땡땡인데도 ‘야’인줄 알았습니다” 한다.

만약 북한남자가 남한사회에 와서 그걸 못고치면 좋아할 여성은 아무도 없다.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 결혼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기껏 탈북하고서 북한남자와 북한여자가 같이 살면 그건 아니올시다 이다. 돈도 없고 외롭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살아서 좋을 리 없다. 당장은 같은 처지라서 편할지 몰라도. 
 

북한사람들이 요즘은 조선족을 닮아간다.

“다른 애들은 잘만 탈북해 남한에 가는데, 니는 왜 그 모양이니.” 부모가 자녀에게 핀잔한다.

탈북민이 중국을 통해 돈을 붙여주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1년에 200만원만 보내주면 북한가족이 넉넉히 1년을 산단다. 그래, 그런 눈치를 대놓고 준다는 것이 북한의 현주소다.

“백두산 줄기가 대단하다 했는데, 요즘 더 높은 끗발은 ‘한라산 줄기’랍니다. 남한에 탈북민을 두고 있는 북한가족은 인기도 많아요. 어느 남동생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더랍니다.” 한라산 줄기를 가졌기에.
 

북한사람이 남한사람을 싫어한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는 그녀들. 

연좌제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바락바락 이를 가는 것은 그 가해자들. 남한사람은 도움이 되면 됐지 피해를 주는 게 없으니 절대 안심하란다. ‘수령님 NO, 머니 OK’라며 북한도 이미 자본을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이념은 90년대에 이미 시래기국에 말아먹었다고요.” 

강씨는 "위대하신 수령님... " 하며 방송에서 외치고는, 그 다음날 탈북했더란다. 다 그렇다더라 한다. 



“탈북민들, 가진 것 없고 힘들게 넘어왔습니다. 조금만 더 진득하게 기다려만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그러면 됩니다.”

그녀들은 탈북민의 편이었다. 그녀들이 탈북민이듯이..

없어도 인격까지 가난하지는 않으니, 잠시 기다려만 주신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강은정씨는 북한에서 ‘돌격대’다 해서 여성들이 시멘트도 메고 달렸단다. 하지만 그런 몸으로도 남한에 와서 식당일을 하니 몸이 천근만근 하고 아프더란다.

“쓰는 근육이 달랐던 겁니다. 근육이 적응해야는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주어지질 않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없이 전화도 안받고 그만 둔다. ‘미안해서’ 잠수 타는 것이다. 

탈북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왔기에 성공해서 남한에 오면 그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해방돼 긴장감을 확 풀게 된다. 그때부터 몸이 말도 안되게 아프기 시작한다. 쉬고 충전할 시간이 필요한데 바로 일해야 하다 보니 몸이 못견디는 것도 있더란다. 

특히 50대에 탈북하면, 북한에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못버틴다. 젊어서 넘어오는 친구들이야 그나마 튼튼하다.

“정신적으로 어린아이처럼 걷는다고 보면 됩니다. 시간을 두고 지지하고 응원하면 제대로 걸을 수 있습니다. 기다려 주시길 (간곡히)부탁드립니다.” 
 


그녀들의 진솔한 토크에 푹 빠졌다. 

그리고 북한사회에 대한, 탈북민에 대한, 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처절한 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도솔문화포럼은 그런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보컬 강은정씨가 부른 노사연의 <바램>이 더욱 듣기 좋았던 것은 탈북민을, 탈북민 강은정씨를 좀 더 이해한 데서 온 대가였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김영일 도솔문화포럼 회장이 끝인사를 한다.

"어때요. 좋으셨어요! 좋으셨다면, 아쉬우셨다면 올해 가을쯤 한번 더 초대드릴까요? 그땐 조금 더 크게 준비할까요?" 하니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났다. 대부분, 아니 모두 만족한 남북문화토크, 콘서트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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