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0일 천안문인협회 회원(회장 김다원) 28명이 남원 서남쪽에 있는 곡성으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조선 후기 정자인 제호정과 함허정을 보고, 심청의 한옥마을에서 심청을 이야기하고, 섬진강변의 봄을 보기 위해서다.
변덕스러운 사춘기 아이같이 봄날은 변화가 심하다. 며칠 화창하더니 버스를 기다리는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곡성의 봄은 청명하고 참으로 고즈넉합니다. 제호정 가는 오솔길에선 자연의 겸허한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4월의 새로 돋는 나뭇잎은 햇빛에 연두색의 기운을 오롯이 드러낸 채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어우러져 함허정의 아련함을 지켜냅니다.”
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하자 천안문학관 관장(이정우)은 우리가 갈 곳을 안내한다. 곡성의 역사, 지리는 물론이고 그 지역민의 인구변화와 문화의 이동까지 술술 풀어낸다. 우리 문학여행의 시작은 버스에서부터다.
먼저 심광형의 호를 딴 ‘제호정(霽湖亭)’으로 향했다.
집 앞의 하마석이 먼저 반긴다. 노둣돌이라고도 하는데 말을 타거나 내릴 때 편리하라고 둔 바위다. 서너 개의 돌층계를 오르니 행랑채 대문이 있다. 제호정은 병조참판을 지낸 심광형이 할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집이다. 그의 할아버지, 심안지는 학문이 깊고 박학다식하여 당시 영호남에 명성이 자자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전념했다.
후손이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 못하고 마당에서 기단에 이르는 층계에 발을 놓다가 잠시 멈추었다. 빨간 스웨터를 입은 할머니가 구부정한 몸으로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무턱대고 집안으로 들어갔으니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연 것처럼 미안했다. 늘 있는 일인지 서로 눈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시 계단을 오른다. 8개의 돌층계를 올라야 기단을 밟을 수 있다.
“여기서 마당으로 떨어지면 큰일나것어!”
걱정이 되는지 유인순 수필가가 말했다. 내려다보니 깊은 마당은 장정이 뛰어내리기도 겁이 날 정도다. 마루에 서서 멀리 보면 100리 밖 무등산이, 눈을 살짝 내리면 30리 밖 곡성의 산이 보인다. 눈을 더 낮게 두면 섬진강이 굽이져 흐른다. 눈에 풍경을 새기고 귀에 자연의 소리를 들이고, 그리고 익혀서 마음에 담는 제호정 주인의 일상을 상상한다.
제호정을 나와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바로 ‘함허정(涵虛亭)’이 보인다.
함허정으로 오르는 계단의 돌도 정겹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만만한 자연석이 담상담상 놓였다. 함허정은 제호정을 지은 심광형이 1543년에 지역선비들과 풍류를 즐기려 만든 정자다. 금방 고꾸라져 섬진강으로 빠질 듯 경사가 급한 땅에 자연석을 주춧돌로 하여 정자를 올렸다. 작은 방을 두고 사방에 툇마루가 있다. 겨울에도 정취를 느낄 수 있게 아궁이를 만들었다.
정자에 올라서서 보니 섬진강이 정자 쪽으로 살짝 몸을 틀었다가 청아한 물소리를 내려주고 간다. 텅 빈 시간에 젖어 든다는 함허涵虛의 뜻처럼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는다. 개구리 소리가 아련하게 빈 마음에 조용하게 든다. 섬진강 물소리와 바람소리에 젖어 시를 읊고 명상을 하던 선비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함허정을 내려와 다음 행선지로 걸음을 옮겼다.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옛 역사에 ‘구 곡성역’란 간판이 그대로 있다. 이 건물은 1930년대 표준형 역사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역사 옆에는 1960~1970년대 거리를 재현한 공간과 벽화골목이 있고 기차역 안에 놀이공원이 있다. 5월이면 1004종의 각 나라에서 온 장미가 장관을 이룬다. 이제 막 한 두 송이 장미가 피고 있다. 보름 후쯤이면 장미향이 곡성 장미공원을 가득 채울 듯하다. 기차를 기다리는 양 손님 대여섯이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다. 곡성역의 ‘시원한 역’ ‘개운한 역’이라 붙인 화장실 이름도 재미있다.
곡성의 전통시장에 가서 싱싱한 나물도 사고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국도 먹고 싶다. 또 노란 천막 아래 펼쳐진 뚝방시장에서 지역주민이 만든 물건도 사고 싶다. 그런데 비가 온다. 시간도 없다. 아쉽다.
눈을 강변에 둔다. 작년엔 붉은 메밀꽃이 강물을 따라 천변을 덮어 장관이었는데 이번엔 보이질 않는다. 섬진강 변을 따라 17번국도 5km 길이의 붉은 철쭉은 2주가량 즐길 수 있는데 이제 막 피어 신호를 보내고 있다. 꽃이 활짝 피면 제 몸을 태우다 뜨거워진 불이 섬진강으로 뛰어들 듯하다.
‘심청 한옥마을’은 곡성군이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심청 이야기마을이라고 불리다가 심청 한옥마을로 바뀌었다. 곤방산 산비탈을 따라 1.5㎞ 올라가면 해발 300m 정도 되는 산자락 아래 한옥이 옹기종기 모였다.
마을 입구의 우람한 느티나무 아래서 심봉사가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고 우리를 맞는다. 돌담길을 따라 기와집과 초가집이 담숭담숭 들어섰는데 집집이 다른 과일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바다도 가깝지 않은데 무슨 심청? 관음사 창건 설화에 ‘심청전’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효녀 원응장’ 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덕산 관음사 사적기’에 따르면 <옛날 충청도 대흥 땅에 앞을 못 보는 원량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홍장이라는 예쁘고 효성이 지극한 딸이 있었다>로 시작된다. 홍장은 진나라의 사신 일행을 만나 예물로 가져온 금은보화를 불사에 바치고 진나라로 건너가 황후가 되었고, 원량은 딸과 이별할 때 많은 눈물을 흘려 눈을 뜨고 95세까지 복을 누렸다는 내용이다.
연꽃 위에 앉은 심청을 두고 우리는 다시 섬진강으로 나왔다.
내를 건너 한옥찻집 ‘두가헌’으로 갔다.
홍수때 처마 끝까지 물이 찼던 두가헌 사진이 있다. 방에서 창을 통해 보니 강물이 굽이져 흐른다. 강 건너엔 야트막한 산이 푸르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도 방에 앉아 이런 풍경을 보았는지 ‘방 창’이란 시를 썼다.
산벚꽃 흐드러진 / 저 산에 들어가 /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 미치게 살다가 /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찻집 마루에 기대서서 박상분 시인이 낭송하는 그의 시를 들었다. 다른 문인들도 질세라 섬진강을 뒤에 두고 시를 낭송했다.
곡성 함허정에서 마음을 비우고 섬진강에선 그 마음에 맑은 물소리를 담았는지 버스에 오르는 문인들의 얼굴이 꽃이다. 얼굴이 꽃이면 마음에 먼저 꽃이 핀 것 아닐까.